윤석열-이준석, 두 번의 갈등과 극적 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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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또한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은 검사 출신 윤 후보와 새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이 대표 간 의견 불일치는 갈등의 골을 더 깊게만 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모든 일정을 돌연 취소하고 홀로 지방 일정을 수행했다. 이후 사흘 만에 윤 후보와 울산에서 만나 의견일치를 이룬 바 있다.
화해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둘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선거 60여 일을 남기고 선대위 전면 해체와 이 대표의 탄핵안까지 나올 정도로 당내 갈등은 더 깊어져만 갔다.
며칠 간 거칠었던 분위기는 긴급 의원총회에서 사그라졌다. 이 대표는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서 사과드린다”고 한발 물러섰고, 윤 후보도 “모든 게 제 책임”이라며 “지난 일을 다 털고 가자”고 답했다. 의총이 끝난 뒤 이 대표는 윤 후보에게 평택 화재사고로 순직한 3명의 소방관의 빈소를 찾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국회 본관 앞에 주차된 이 대표의 차량을 타고 평택으로 이동했다.
이재명의 쇄신, `느린` 매머드 → `기민한` 슬림 선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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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후보는 선대위 출범 두 달 만에 지난해 12월 2일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16개 본부를 6개로 통폐합했다. 선대위원장만 13명에 달했던 기존의 매머드 선대위와 달리, 8명으로 축소했다. 복잡한 의사결정을 단순화하고 후보가 현장중심으로 더욱 뛰겠다는 취지였다. 6명 본부장 중 유일한 외부인사이자 `쌀집 아저씨`로 불리는 MBC PD 출신의 김영희 홍보본부장의 영입도 주목 포인트였다.
`이낙연 극적 등판`…이재명의 중도 표심 확장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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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지난해 10월 10일 공개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누적 득표율 50.29%(71만 9905표)를 기록하며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고 대선 후보로 곧장 직행했지만 당시 `투표 방식 처리 문제`를 두고 두 경선 후보 간 갈등이 지속됐다.
이 후보의 유세 현장에 이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아 `갈등설`이 오갔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달 8일 이 위원장이 이 후보와 당 선대위의 간곡한 요청으로 선거 전면에 나서며 일축됐다.
실제로 이 위원장의 합류 이후, 이 위원장의 핵심지지 핵심층인 중도·여성 표심이 움직이며 이 후보의 지지율이 등반했다.
`배우자 리스크`…이례적 배우자의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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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씨는 지난해 12월 `허위 경력` 의혹으로 대국민사과를 했다. 윤 후보의 정치 입문 후 첫 공식 일정이었다. 앞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논란으로 공개 행보를 최소화했던 김씨는 최근까지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며 그 이후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외에도 이 후보 아들의 `불법 도박` 의혹으로 이 후보는 `큰절 사과`까지 했으며 윤 후보의 장모 `땅 투기 비리 의혹`으로 윤 후보 또한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거절→ 극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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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표는 지난달 13일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윤 후보 측에서 받지 않자 사실상 `단일화 결렬` 수순을 밟았다. 또한 지난달 23일 울산 태화종합시장 유세 도중 “상대방을 떨어트리기 위해 마음에 안 들고 무능한 후보를 뽑아서 그 사람이 당선되면 1년만 지나고 나면 `내가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또 그럴 거다”라고 밝히며 단일화에 대한 분명한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일 마지막 대선 TV 토론이 끝난 뒤, 자정을 넘은 시각 2시간 가량 논의를 거쳐 `단일화`에 합의한 두 사람은 3일 공동정부 구성과 대선 후 합당을 전제로 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야는 두 사람의 단일화의 영향을 두고 서로 유불리를 점치기도 했다. 민주당은 안 대표의 지지자들이 돌아서서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역풍이 불기도 한다고 해석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보수 진영의 총결집’으로 분석하며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