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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HP는 오는 10월말이면 회사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둘로 나누게 된다.
HP라는 개인용 컴퓨터(PC) 공룡의 실험이 과연 성공으로 끝날지에 따라 미국 IT업계에서 분사(spin-off)가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할 수 있을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0월까지 두 회사로…네트워크사업 기회 노려
HP는 올 10월말까지 회사를 기존 PC와 프린터사업를 남겨 HP라는 회사를 만들고 나머지 PC 서버와 하드웨어 등 기업용 컴퓨팅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사업부문을 HP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로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HP는 최근 3년간 추진해온 비용 절감 프로그램에 따른 4만8000명 감축을 뛰어넘는 5만5000명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 계획이다.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가진 컨퍼런스콜에서 “회사를 두 개로 나누는 것은 올바른 결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분사를 통해 두 회사 모두에게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리는 동시에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그는 “우리가 참여하는 시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그보다 더 빨리 바뀌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을 만큼 탁월한 비용구조를 가져야 하며 몸집을 가볍게 해 민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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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이어온 HP엔터프라이즈를 살릴 기회도 엿보인다. 최근 27억달러(약 2조974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인수한 무선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아루바 네트웍스가 그것이다.아루바는 호텔이나 쇼핑몰 등 인프라(사회적 생산기반)시설에 필요한 무선 네트워크를 공급하는 업체로, 다음달중 거래가 마무리되면 HP는 아루바 인수를 통해 최근 부진했던 네트워크 사업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HP의 네트워킹 사업부문 매출은 2015회계연도 1분기(작년 11월~올 1월)에 전년 동기대비 11% 줄어든 5억6200만달러에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HP가 이루바의 매출을 지난해 7억2900만달러에서 2017년까지 연간 10억달러로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사 니드햄앤컴퍼니 애널리스트는 HP가 이번 인수로 기업용 무선 네트워킹 시장에서 20% 의 시장점유율을 올려 현재 50%의 점유율로 독주하고 있는 시스코 시스템즈를 추격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사 후에도 여전한 공룡…경쟁력도 `글쎄`
이 때문에 회사를 둘로 나눈다해도 장기적인 비전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남아 있다. HP엔터프라이즈가 영위하는 PC 서버 사업의 경우 IBM이 중국 레보노에 해당 사업을 매각한데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사양산업이다. 앞으로 추진할 핵심 사업은 플래시 스토리지와 소프트웨어 집약 네트워킹사업, 클라우드 서비스 정도인데, HP는 불행하게도 이들 사업에서 업계 리더와는 거리가 먼 회사다. 선두인 아마존닷컴은 고사하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주어 등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도 강점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보니 HP는 몸집을 줄이기 위한 분사를 준비하면서도 사업 분리 이후 추가 M&A 대상을 벌써부터 물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휘트먼 CEO는 “앞으로도 우리가 인수하고픈 매우 흥미로운 사업들이 많다”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에 추가적인 M&A는 좀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HP가 잠재적인 경쟁자로 여기고 있는 시스코의 척 로빈스 수석 부사장은 지난달 한 컨퍼런스에서 “HP의 분사가 대담한 결정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서 2년씩이나 걸리는 이런 의사 결정은 새로운 기회라기보다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우리가 예의주시하는 것은 HP와 같은 거대 IT기업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