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세형 기자] 작년 11월, 한 때 잘 나가던 전직 중소기업 CEO 12명이 경상남도 남해의 외딴섬 죽도에 들어갔다. 그 자신도 실패의 경험을 맛 본 한 중소기업인이 만든 재단이 처음 마련한 재기캠프에 입소하기 위해서였다.
4주 일정으로 치러진 재기캠프는 정신교육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자신에게서 찾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자는 취지에서였다. 12명의 전직 사장님들은 하루 두끼만 먹고 잠은 텐트에서 잤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영화 실미도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참여자들은 다시 재기할 에너지를 얻고 캠프를 떠났다.
재기캠프는 이렇다할 정부지원이 없는 우리나라 패자부활 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벤처 거품 당시 생겨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패자부활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10여년이 지난 현재도 자신의 정신력 하나로 일어서는 것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대보증제도는 패자부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통합도산법에 따라 법인은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를 감면받지만 연대보증을 선 회사의 대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최근 몇몇 중소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은행들과 중소기업들에 보증을 서 전부 물어낼 처지에 몰린 기술보증보험이 맞소송전에 들어간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결국 연대보증을 선 대표자는 신용불량을 피할 수 없다. 신용불량자로 떨어지게 되면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신용불량이 되더라도 법인은 만들 수 있지만 법인이 금융거래를 할 수 없어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속칭 지인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뒤 재기를 꿈꾸는 편법이 이뤄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패자부활을 위해 500억원 규모 융자상환금 조정형 창업자금을 새로 만들고, 재창업자금으로 200억원을 지원한다. 조정형 창업자금은 정직한 기업인이 사업에 실패할 경우 융자금 일부를 깎아주는 것으로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신용불량자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창업자금은 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우선 신용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기청 관계자는 “그간 수년간 제대로 되지 못한 패자부활정책을 재차 시도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같은 금액은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는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책에 주목하고 있다. 대책에는 가장 큰 걸림돌인 연대보증제도 폐지가 포함돼 있고 김석동 위원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력 폐지 방침을 언급하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금융권의 양보와 함께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