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지쏭이 누구야?"
"팍지쏭도 몰라? 너희 나라 진짜 잘하는 축구선수 있잖아"
"아~ 박지성?"
한창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한국에서 붉은 악마 옷을 입고 무리들에 껴서 같이 응원했어야 했는데 불행히도 한국 밖에 있었다. 첫번째 토고전은 네팔에서, 두번째 프랑스전은 인도 바라나시에서, 세번째 스위스전은 인도 고아에서 맞이했다.
티벳에서 네팔로 돌아온 날, 드디어 월드컵 본선 첫번째 경기 토고전이 열렸다. 이날 한국과 토고 경기가 있다고 귀띔해준 네팔인이 4명도 넘는다. 지난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의 위상이 확실히 높아진 듯 하다.
한국어 발음이 워낙 어려운지라 더듬거리긴 했지만 아는 한국 선수들이 있냐고 물으니 박지성에서부터 안정환, 설기현 등 줄줄이 나온다. 어딜 가도 축구 얘기에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4강에 오르지 않았냐며 자기 나라 일인양 같이 자랑스러워한다.
▲ 2006년 월드컵 한국 대 프랑스전, 인도 현지 신문 한면을 도배했다 | |
역시 나라 밖에 나와서 보는 축구는 애국심을 더욱 자극한다.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 하나로, 일심동체가 되어 응원하고 같이 기뻐한다. 각자 시킨 안주지만 같이 먹자며 돌리고 준비해 온 과일을 나눠먹으며 목청 터져라 응원했다.
토고가 먼저 한 골을 넣은 상태, 모두 노심초사하면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이 시작한지 9분, 이천수가 박지성이 얻어낸 프리킥을 이어받아 동점골을 터뜨렸다. 환호성이 터졌다. 이어 안정환이 역전골을 작렬시키며 한국은 월드컵 사상 첫 `원정경기 승리`를 거뒀다.
'짱'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짱의 주인 아주머니가 "지금부터 나오는 술은 모두 쏜다"며 화끈하게 인심을 썼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은 노래방 기기도 동원됐다. 그날 처음 본 한국인들과 아주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것처럼 미친 듯이 놀았다. 주로 30대 중후반이었는데 나이도, 뭘 하는 사람들인지도 상관 없었다. 그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하나가 됐다.
인사를 하면서 "너희들 방금 경기 봤지?"하고 거만하게 물었다. "한국 축구 잘 하더라"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흐뭇한 마음으로 싱긋 웃으며 손으로 브이자를 딱 그려줬다.
▲ 인도 현지 언론에 나온 이운재 선수 | |
눈 뜨자 마자 경기 결과를 물었다. 다행히 일행중 한명이 꿋꿋하게 버티다 새벽에 축구경기를 봤다. 너무 생생하게 축구 경기를 중계해줬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패`였다. 차라리 안 보길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본 신문, 온통 붉은색 투성이다. 붉은 악마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린 것이다. 골키퍼인 이운재 사진도 한켠을 장식했다. 경기는 졌지만 기사 내용은 한국이 강한 상대방을 맞아 잘 싸웠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어제 축구를 생각하니 착잡했다. 게스트하우스 2층 테라스에 앉아 아침 식사를 주문하는데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와서는 한국인이냐며 어제 축구를 봤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후다닥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 1층에서 신문을 가져다 준다. 스위스, 한국에 2:0으로 승. 한국 16강전 탈락.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는 사람을 찾아온 프랑스계 제약회사 마케팅 직원 아밋은 어제 축구를 모두 봤다며 참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국편에서 응원을 했다면서 한국 축구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리속에 각인돼 있나보다.
경기에 지기는 했지만 한국 축구에 대한 이들의 지대한 관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얘기는 첫째 군대, 둘째 축구, 셋째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고 했던가. 월드컵때 잠깐 분위기에 휩쓸려 열광하긴 했지만 사실 축구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축구가 한국에 안겨준 위상은 상당했다. 외국에서 실감한 한국 스포츠의 파워. 멀리 타국에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한국을 축구 강국으로 만들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