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시장 공략기-현대자동차)③MK의 `품질경영`

  • 등록 2003-11-12 오후 12:09:01

    수정 2003-11-12 오후 12:09:01

[edaily 지영한기자] 현대자동차(005380)의 대표적 히트차종중 하나인 준중형 아반떼XD 출시를 앞두고 있던 2000년 4월 중순. 현대차의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은 정몽구 그룹 회장에게 한 통의 각서를 제출했다. 각서의 내용은 이랬다. "앞으로 출시되는 신차에서 조금이라도 결함이 발견되면 어떠한 책임도 달게 받겠다" 각서에는 마케팅부문을 제외한 연구개발 및 생산분야 등 모든 임직원들의 자필 서명이 담겨졌다. 당시 이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99년말 시판된 트라제 XG가 6개월 남짓동안 5차례나 리콜(제조물결함에 따른 무상교환 및 부품수리)되고 베르나와 EF소나타 등 중소형차 구분없이 리콜이 잇따르자 `이래선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급기야 정몽구 회장이 "지금까지 리콜된 차량들은 문제삼지 않겠다. 하지만 향후 신차에서 품질상 하자가 나타나면 그 때는 간과하지 않겠다"는 엄명을 내렸고, 이에 대한 즉각반응으로 임직원들이 아반떼XD의 출시에 맞춰 `각서`라는 방식으로 각오를 되새겼다. 물론 이 무렵 차량품질에 대한 현대차의 고민이 하루 이틀된 문제는 아니었다. 86년 엑셀신화를 창조하며 미국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몇 년뒤부턴 `품질이 형편없는 값싼 차`라는 오명을 감내해야만 했다. 엑셀 론칭 이후 승승장구하던 기세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현대차는 `품질이 낮고 싼 차`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미국시장 판매대수가 되레 급격히 감소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은 오히려 약이 됐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메카인 미국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대차는 해외업체와의 품질격차 해소에 전력해야만 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최근 몇년간 현대차에 대한 해외시장, 특히 미국 소비자들의 평판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내 자동차품질 평가기관인 JD파워가 신차구입후 3개월간 사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엔진 변속기 승차감 스타일 등 8개 항목에 걸쳐 매년 실시하는 상품성만족도(appeal) 조사결과는 최근 수년간 현대차가 질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현대차는 99년 `어필` 조사에서 전체 37개사중 최하위권인 36위를 차지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2000년에는 34위로 올라섰고 2001년엔 30위, 2002년엔 28위로 해마다 순위를 높였다. 그러던 것이 올들어선 1000점 만점에 847점의 평가점수를 얻어 랭킹순위가 21위로 무려 7단계나 점프, 일본 도요타자동차(853점)의 만족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같은 변화의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정 회장은 98년 12월 현대그룹 공동회장 겸 현대차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현대차의 품질혁신을 서둘렀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그는 현대차의 경영을 맡기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의 경영을 통해 정비와 서비스부문을 섭렵했는데 이 때 품질경영이 왜 필요한지를 현장에서 직접 몸을 통해 깨우쳤다. 현장경영과 품질경영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정 회장은 99년 1월엔 임기 3년의 표준협회장직에도 취임했는데 품질경영에 대한 그의 `집착`을 감안하면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표준협회장의 취임 일성은 "표준화와 품질경영을 산업현장에 보급하겠다"였다. 정 회장은 자신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이듬해이자 표준협회장직을 맡게된 99년 그는 현대차에 6시그마 품질혁신 운동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현대차에선 그동안 TQC(전사적 품질관리), VE(가치공학), TPM(전사적 예방보전),CR(원가절감)등 다양한 품질개선 운동이 전개돼왔다. 그러나 북미시장의 판매대수가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는 위기상황이 초래되자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 즉 `품질이 낮은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정 회장이 비장의 카드로 제시한 게 바로 6시그마 혁신운동이었다. 정 회장은 당시 6시그마 운동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 "6시그마 경영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새로운 경영기법이자 21세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대차의 생존방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결국 회장의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현대차에선 99년 11월부터 6시그마운동이 본격화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블랙벨트와 그린벨트를 망라해 3500명의 개선전문가가 양성됐고 3800건의 프로젝트 추진과 1800억원의 비용절감 등 성과도 구체화됐다. 6시그마는 현대차 뿐만 아니라 협력사에도 확산돼 협력회사의 품질보증표준까지 마련됐다. 또한 연구소부분의 DFSS(Design for Six Sigma)활동과 현대·기아차의 제조부문과 협력사부문의 6시그마간 업무통합으로 현대차그룹의 6시그마 활동은 이제 신차 개발단계에서 사무부문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활동에 이르기까지 전사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 회장은 6시그마 운동을 도입한 직후엔 양산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곧 바로 신차를 내놓던 관례를 깨고 양산개시 이후 1~2개월간의 `품질검증` 단계를 거친 이후에나 판매가 가능하도록 의사결정시스템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특히 상품기획에서 최종 생산·판매, AS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품질목표를 달성 후 다음 단계를 진행도록 하는 `품질합격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6시그마 운동과 더불어 현대차의 품질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은 그간의 성과에 애써 만족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근래 직원대상 교육이나 강연 땐 으레 "해외에서 제 값을 받기 위해 품질확보가 최우선이고, 품질의 보장없이는 2010년 글로벌 톱 5 진입도 불가능하다"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품질혁신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이같은 `집착`이 현대차를 글로벌 `티어 원(Tier One)`에 근접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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