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y 아메리카)④독수리 `샘`을 조심하라

亞·중동 국부펀드, 경험 미숙..고급 금융인력 갖춰야
사모펀드·헤지펀드등 `아메리카 독수리` 경쟁도 걱정
美보호주의·각국 규제도 관건..투자수익률 해칠 수도
  • 등록 2008-02-01 오후 2:29:12

    수정 2008-02-01 오후 2:32:49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국부(國富)를 더 많이 쌓으려다 국부를 잃을 수도 있다?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미국 기업과 금융회사를 사들이는 사례는 우리에게 두가지 형태로 쾌감을 준다. 아시아권이 부유해졌다는 자부심 또는 아시아경제의 자신감. 그리고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의 자산을 샀다는 우쭐함이다.

이런 쾌감은 일시적 도취감에 불과하다. 국부펀드를 만든 이유가 국민에게 쾌감을 주는데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돈인 국부펀드 자산을 더 불리는 것이 투자의 진짜 이유다.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매수 대상이 된 미국은 외국 국부펀드가 자본력을 정치적 무기로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투자자로서는 이같은 정치 논리와 함께 시장 논리도 걱정해야 한다.  

싸다고 함부로 미국 기업을 사들이기엔 국부펀드를 굴리고 있는 중국, 아시아, 중동 등 각국 투자자금이 감당해야 할 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어리숙한` 국부펀드, 월가에서 코 베일 수 있다

카타르 국영 투자펀드인 델타펀드. 지난해 여름 영국 식품유통업체 세인스버리를 190억달러에 인수하려다 11시간 만에 물러난 사건이 있었다. 미국 은행가들은 이런 카타르 국부펀드를 `아마추어`라고 낙인찍었다.

국부펀드의 자본력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능가한다고 해도, 투자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덩치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월가가 국부펀드를 복잡한 상품구조와 계약조건으로 얼마든지 농락할 수 있다.
 
월가는 투자자금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이면서도 각종 `계약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금융노하우 자체가 강력한 방어무기인 셈이다. 반면 국부펀드나 아시아권 기업들은 이들의 자문이 없이는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성이 취약하다.   

사실 월가의 토박이도 미국기업 인수로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사모펀드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KR)를 운영하는 `백전 노장` 헨리 크라비스도 최근 금융경색에 인력 유출까지 겹치면서 인수 기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용카드 지불정보업체 퍼스트 데이타(인수가 290억달러)와 텍사스 최대 전력업체 TXU(440억달러) 같은 굵직굵직한 차입매수(LBO)를 끌어낸 KKR은 영국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 얼라이언스 부츠의 LBO 자금(188억달러 이상으로 추정)을 마련하지 못해 한때 발을 구른 것. 

따라서 `굴러들어온 돌`인 국부펀드가 미국기업 투자로 본래의 목적인 고수익률을 달성하려면, 최소한 월가의 수를 읽어낼 수 있는 금융 전문가를 갖춰야 한다. 한 마디로 수익률은 인력싸움인 셈.

비즈니스위크는 "국부펀드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자본이 아니라 금융전문가"라고 지적했다. 중국도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를 만들기 전에 차이나달러를 굴릴 인재부터 찾았다.

"월가에 피가 흥건할 때 사라"는 말처럼 현재 미국기업이 싸지만 더 떨어져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바닥을 정확히 예측해 유리한 조건에 미국기업을 사들이는 것은 전문가 없이는 불가능한 임무다.

◇염가매수 노리는 `아메리카 독수리` 많다

미국 기업이 싸다는 것은 기관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위기에 큰 돈을 벌 기회가 오는 것도 누구나 안다. 다만 월가 `타짜`들은 어디까지 떨어질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아메리카 독수리`인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국부펀드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은 자금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기업들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질 때를 기다리며 자금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 헤지펀드, 벌처펀드 등에 윌버 로스 같은 투자의 고수들이 뛰어들기 시작, 경쟁이 벌어지면 주도권은 매각 당사자인 미국기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사모펀드 칼라일은 염가 매수를 위해 에드워드 네드 켈리 前 머칸타일 뱅크쉐어즈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고 10명 안팎의 전담팀을 꾸렸다. KKR은 이미 1년 전부터 관련 팀 인원을 10명에서 17명으로 보강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 핌코의 라이벌 TCW 그룹, 엘링턴 매니지먼트 그룹, 마라톤 자산운용 등도 지난해 말부터 미국의 `떨이` 자산을 사들이기 위해 벌처펀드 설립에 나서, 월가에 벌처펀드 설립 바람이 불었다.
 
`벌처(vulture)`란 원래 대머리 독수리를 뜻하는 말이다. 파산 기업이나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을 싼 값에 인수, 비싼 값으로 되파는 자본이 마치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의 습성과 흡사하다는 의미에서 `벌처 펀드`라 이름 붙여진 것. 

국부펀드는 이들과 경쟁해서 미국 투자를 해야하는 하는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국부펀드가 뼈를 발라놓으면 미국 펀드가 낚아채는 상황이 올수 있다. 결국 타이밍이 문제.

◇규제와 수익률의 간극..`리스크는 본토에도`

▲ 세계 10대 외환보유국. 보라색이 국제통화기금(IMF)이 산출한 외환보유고이고, 자주색은 국부펀드 규모이다. (단위: 조달러)



최근 한국투자공사가(KIC)가 미국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 지분에 투자한 직후 수익률 논란이 벌어졌다. 메릴린치 주가가 약세장에서 급락하자, 손실을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부터 지분 인수 조건이 나빴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국부펀드의 고민은 투자수익률이다. 특히 정부 규제가 독립성을 흔들어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고수익률을 올려야 하는 딜레마가 국부펀드를 옥죄고 있다.

출범한 지 1년도 안된 중국 국부펀드 CIC는 운용 철학을 고수익에서 위험 회피로 바꾼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초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투자가 실패해, 정부가 최소한 원금을 보전하라고 압박한 것.
 
CIC는 지난해 5월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기업공개(IPO) 직전에 10% 가까운 지분을 사들였지만, 블랙스톤은 기업 공개 직후 40% 가까이 추락했다. 블랙스톤 투자는 ▲정점일 때 매수했고 ▲인수가 협상에 소극적이었고 ▲이사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또 중국 증시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때도 증시 과열을 막으려는 중국 정부 탓에 CIC는 중국 증시에 자유롭게 투자하지 못했다.

◇정치논리와 시장논리..`보호주의가 수익률로 귀결`

아시아 국부펀드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홀딩스가 보호주의 역풍을 맞고 있는 점은 해외 투자의 정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테마섹은 지난 2006년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로부터 통신사 신 코퍼레이션 지분을 사들였지만, 당초 확실한 투자라고 판단했던 것이 태국 정부의 반발로 수익을 못 냈다. 태국 정부가 탁신 전 총리의 세금 문제를 걸고 넘어졌고, 테마섹의 인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결국 테마섹의 태국 투자 성적은 최악을 기록해, 실적을 깎아먹었다.

보호주의는 정치 논리지만, 결국 수익률을 억누른다는 점에서 시장 논리로 귀결된다. 따라서 미국 투자에 나선 투자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치적 반발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 정부도 외국자본에 서슬 퍼렇게 반응한다. 민주당 소속의 찰스 E. 슈머 뉴욕주 상원의원은 "미국기업이 국부펀드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게 좋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그 자본이 미국을 위해 쓰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금 월가 금융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려 아시아와 중동 국부펀드의 자금을 수혈받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이들의 자세도 크게 달라질 것이 명백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국부펀드의 투자에 개입해 규제하기 시작하면, 국부펀드의 미국 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 시장에 진출, 제너럴모터스(GM) 등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아성을 위협하는 도요타는 본받을 만하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활발히 로비를 펼치는 한편,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인의 마음을 샀다.
 
결국 국부펀드가 월가 경쟁자들을 제치고 미국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정확한 상황 파악과 위험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투자가 미국과 국부펀드 모두에게 유익한 윈윈 게임이란 점을 이해시켜야만 성공사례로 만들어 낼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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