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디케이산업(주) 김보곤(50) 대표이사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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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대표는 아버지의 빚보증이 화근이 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전남 기계공고(현 광주공고)에 진학했을 때도 학업성적이 비교적 좋은 편이었지만 실습도구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 자퇴서를 제출하고 한동안 방황했다.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간 김 대표는 고 3때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남다른 근면성이 눈에 띄어 졸업 후 곧바로 대우중공업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금형 설계분야 전문가를 꿈꿨던 그는 창업을 목표로 금형업체인 (주)동양 정공에 입사, 금형기술과 기업경영에 관한 비결을 쌓아갔다. 그리고 1993년, 퇴직금 3000만 원을 밑천 삼아 직원 5명과 금형프레스 업체인 대광산업(現 디케이산업)을 설립했다.
`모범중소기업인상`, `수출유망중소기업`, `3000만 불 수출의 탑` 등 해마다 각종 표창을 받아온 디케이산업(주)의 주력 생산 품목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에 사용되는 각종 부품. 이른바 백색가전이라 불리는 가전제품용 부품 수천 종을 생산, 삼성전자 등 대형 가전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인력 관리와 인재 육성이다.
지난 2008년 경기불황으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도할 때, 그는 오히려 신규 채용을 확대, 당시 163명이던 근로자를 250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력감축 대신 사업영역을 오히려 확장했다. 그는 "이런 시도를 하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즉각 대처할 수 있는 고급 인력과 독보적인 기술이 항상 준비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김 대표는 사내 직종 교육, 한일협력 재단을 통한 6개월 단위의 어학연수 및 기술습득 과정을 통해 사원들의 실력 향상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역시 2004년 전남대 산업공학과에 입학, 만학도의 꿈을 이뤄냈다.
"기껏 기술 가르쳐 놓으면 더 좋은 조건 찾아 다른 회사로 가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투자한 것이 아깝고 직원들의 이직을 두려워하면 사람을 키우지 못합니다. 설령 오랜 시간 키운 근로자가 이직을 해도 그 기술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내가 투자한 사람이 반드시 내 직원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접었습니다"
그의 회사에는 이른바 3S 정책이 있다. 노사 간 긍정적인 토론문화를 추구하는 Say(말),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는 Stay(머무름), 사원들에 대한 복지지원을 뜻하는 Serve(봉사)가 그것이다. 근로자 스스로 평생 일하고 싶은 가족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