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운용, `조향장치`가 실종됐다

가속페달은 있는데, 조향장치 작동하나 우려확산
종합부처 재경부, 논리무장해야 리더십 확보

  • 등록 2005-11-28 오후 4:07:16

    수정 2005-11-28 오후 4:07:16

[이데일리 김수헌기자] 지난 7월말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오는 8월말까지 LG의 파주투자 허용을 결정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허용결정은 11월초에 이뤄졌다.

이해관계가 얽힌 정부부처들의 조율난항으로 무려 석달 남짓이나 지체된 셈이다.

3조 5000억원의 투자를 계획했던 LG는 정책방향의 불확실성때문에 투자규모를 절반가량이나 줄였다. 대외적으로는 시장이 불확실하고 투자의 시급성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재경부는 최근 장차관의 외부강연때마다 토지이용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토지이용규제야 말로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최대장벽이라고까지 했다. 기업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있다.

그러나 정작 재경부 관계자는 "국토이용계획의 주무부처가 건교부이기 때문에 재경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건교부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종합경제부처인 재경부의 정책조율능력과 리더십이 이처럼 약화되면서, 경제정책의 방향을 잡아가는 `조향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액셀레이터만 있고, 조향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는 `갈 지(之)`자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과는 사고라는 후유증이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부처간 이해관계 대립이 시급한 정책추진 지연으로까지 연결되면서, 경제운용에 상당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여기 저기 `불협화음`..국민들 어느 장단에?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부처 장차관들의 엇박자 발언이다.

재경부 차관이 스크린쿼터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한 지 불과 보름도 안돼 문화부 장관이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공개선언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스크린쿼터를 미국과의 FTA와 연계시키지 않을 것이며, 어떤 상황에도 스크린쿼터는 유지돼야 한다"고까지 말해, 스크린쿼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재경부와 문화부간에 스크린쿼터에 대해 합의된 입장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관측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이처럼 두 부처간 극명한 입장차가 드러나면서, 대미 통상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정부의 운신폭은 더욱 좁아졌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기관의 보육료는 2007년부터 상한선을 없애고 자율화하는 방안을 부처간 협의중"이라고 밝힌지 며칠만에 여성부 장하진 장관이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자율화 반대입장을 보였다.

재경부가 사립학교에 대한 기부금 손비인정 확대는 조세정책상 어렵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는데도, 교육부총리가 대외강연에서 이를 기정사실처럼 발표하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교육부는 손비인정 확대를 `쟁취`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민감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놓고 정부 부처가 제각각 장단을 두드리는 꼴"이라며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총리실등 유관기관 정책조율도 뒷전

재경부가 최근 내놓은 자체정책평가 자료에도 부처간 조율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재경부는 올해초부터 27개 서비스산업 분야별 태스크포스(TF)를 결성하는 등 서비스경쟁력 강화를 통한 일자리창출과 지속성장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월 현재 생계형서비스, 문화, 관광 레저 등 13개 분야만 대책을 발표, 절반수준에 그쳤다.

재경부는 "보육, 의료, 교육의 경우 관련부처와 이해관계자의 의견대립으로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가장 뒤떨어진 분야에서 가장 조율이 안되고 있는 셈이다.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제주에 국내 영리병원을 세워 의료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려던 구상은 외국인에게만 허용하는 쪽으로 틀어졌고,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과 외국인학교도 이제서야 겨우 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데까지 왔다. 재경부 보건복지부 교육부의 이견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초부터 야심차게 총리 주재 서비스관계장관회의를 출범시켰지만 지금까지 회의는 3월과 8월 단 두차례 있었다. 그나마 3차 회의는 12월 중 하겠다는 계획만 있지, 아직 불확실하다. 회의 자체가 총리의 국회일정이나 출장계획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 만연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렇게 되면 경제정책의 방향자체가 정책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것인지, 부처이익을 위한 것인지 모호해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담배값 인상을 둘러싸고 지난 6월 정부 부처가 보여준 `동상이몽`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재경부는 지난해 말 담배값 인상이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을 갉아먹었다는 판단과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담배값을 올리면 담배소비세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교육부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혜택을 교육부도 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실속챙기기에 열을 올렸다. 

담배값 인상문제는 아직도 국회 계류중이다.

◇재경부 일방통행 시절 끝났다..논리무장이 리더십 괸건 

이같은 `갈짓자` 경제정책에 대해 일각에서는 경제부총리의 정책조율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선진화포럼은 최근 경제토론회에서 "경제에 사공이 많으면 안된다"면서 "경제운용이 경제부총리에게 일원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이 토론회에서 "과거 재정경제원이 갖고 있던 권한이 지금은 다른 부처로 많이 넘어가 예전과 같이 일관성 있고 파워풀한 정책집행이 어렵다"며 며 "앞으로 경제부총리에게 좀 더 힘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간연구소 관계자들은 대체로 "정부정책의 방향은 논리의 타당성과 실증적 분석, 정책수요자인 국민혜택 등을 놓고 어느 부처의 의견이 더 옳으냐는 것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재경부가 정책을 조율하고 주도하려 해도 이런 점이 부족하면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결국 재경부가 탄탄한 논리로 무장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옛날처럼 부처간부들을 불러모아 지시하는 식의 조율이 가능하던 시대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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