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채권프리즘)한국은행과 오디세우스의 결박

  • 등록 2008-08-20 오후 2:26:27

    수정 2008-08-20 오후 2:26:27

[이데일리 김경록 칼럼니스트] 한국은행은 8월 7일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리 인상 이후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7월 24일자 칼럼(호민관의 궁색한 선택)에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지만 이러한 선택은 궁색하게 보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은은 왜 궁색하게 보일 것을 알면서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이것은 정부나 일반인의 입장이 아닌 철저하게 한은이 처해진 조건에서 접근해야 한다.

◇ 자기를 묶어 버리는 강력한 게임 규칙을 설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향하면서 지중해를 건널 때, 사이렌의 노래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그 노래 소리는 유혹이 너무 강해서 이를 듣게 되면 급류로 배를 몰아서 파선되어 잡아 먹히게 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모두 막게 하고 부하들에게 자신은 돛대에 꼼짝 못하게 묶어두라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 소리를 듣지만 스스로 묶은 결박 때문에 무사히 지중해를 건너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정부는 경제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다음과 같은 게임 규칙을 설정하여 시장에 물가안정에 대한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첫째, 한국은행은 물가만 관리하라는 것이다. 정책 목표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콕 집어서 그것 하나만 관리하라고 했다(“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은법 1조).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주어진 미국의 중앙은행과는 다르다.

둘째, 이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을 정부에서 독립시키는 것이다. 금통위원은 한은 총재, 한은 부총재, 한은 총재 추천 1인, 재경부 장관 추천 1인, 금융위 추천 1인, 상공회의소 추천 1인, 전경련 회장 추천 1인으로, 총 7명 중 3명이 한은과 관련되어 있다.

셋째, 물가목표는 헤드라인 CPI로 잡았다. 이것은 농산물이나 원자재 가격의 변동까지도 모두 포함한 것이므로, 환율의 변동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의 변동에 따른 물가 변화도 통화정책을 통해서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한국은행이 외압 등과 같은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치 배수진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러한 규칙을 만들고 공표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것이다.

◇ 주어진 게임 규칙에서 한은이 직면하고 있는 조건

이들 조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은행은 3년 동안의 평균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는데, 2007~2009년 동안 3.0%에서 상하 0.5%까지 허용된다. 즉 2007~2009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2.5~3.5%사이에 있으면 한은의 목표는 달성된다.

2007년 물가상승률은 2.5%이고 2008년 한은의 추정치는 4.8%이다. 한은이 3년 물가 목표 상한인 3.5%를 맞추기 위해서는 2009년 물가상승률은 3.2%를 넘지 않아야 한다. 반면에 2.5%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려면 2009년 물가상승률이 0.2%를 넘기만 하면 된다.

한은에게 현재 주어진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한은은 성장률 하락을 잘 방어했다고 보상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한은은 중기 물가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달성하지 못할 시에 그 책임이 있다.
(2) 2009년 물가상승률이 3.2%를 넘을 경우 한은은 물가 목표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시장의 예측에 따르면 3.2%를 넘어설 가능성이 더 크다.
(3) 물가상승률의 2차 파급효과가 어떻게 가시화될지 불확실하다.
(4) 그렇다고 물가 목표 자체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기대 물가를 더욱 부추길 우려가 있으므로 어렵다.
(5) 올해 성장률은 내수와 수출의 양극화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4.6%수준으로 잠재성장률은 된다.

◇ 주어진 조건에서 최적의 전략적 의사결정

이러한 조건들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 우선 금리를 한번은 인상하고 보는 최소한의 행동을 하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일 것이다. 만일 인플레이션이 꺾인다면 금리인상의 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진다면 인상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하락한다면? 만일 그때 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다면 한은의 책임은 경감될 것이고, 물가가 잡혀 있다면 이제 물가가 잡혔으므로 금리를 인하한다고 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전략의 가장 큰 이점은 무엇일까? 물가 목표제, 한은의 독립 등 스스로 자승자박하기까지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하게 된다. 만일 자승자박하면서까지 물가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놓고 외부적 어려움에 대해 당장 결박을 풀어버린다면, 향후 물가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위의 전략적 의사 결정을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경기침체 가능성이 70%이고, 인플레가 높아지는 가능성을 30%라고 하자. 인플레가 발생했을 경우 한은이 이미 금리를 인상한 경우와 금리를 동결한 경우 한은이 받는 보상과 벌칙은 +50, -50, 경기 침체가 발생했을 때 한은이 이미 금리를 인상했을 경우와 동결했을 경우 받는 벌칙과 보상은 각각 -10, +10이라고 하자.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물가 목표가 가장 우선인 한은의 입장을 감안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금리 인상과 동결에 대한 기대값을 비교해보면 금리인상이 보다 좋은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은의 전망치에 따르면 경기침체의 가능성은 70%보다 낮고, 인플레 가속의 가능성은 30%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럴 경우 금리 인상의 기대값은 아래에 계산된 수치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는 국면

개인적으로 한은의 금번 금리인상 결정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런 규칙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면 금리인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한은 총재가 성장과 물가의 괴리가 발생하는 이런 국면에서 한은의 본연의 업무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게임 상황을 보다 숙고한 것일 게다.

판단컨대 이번 8월의 결정이 연말에 다소 빈정거림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한은으로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한은의 입장에서는 70% 놀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30%가 발생했을 경우 받는 비용(penalty)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결연한 의지로 자기를 묶어놓고, 조그마한 유혹에 밧줄을 풀어버리면 장기적으로 한은의 신뢰성에 손상이 간다.

한은은 물가목표제에서 그 상한선을 처음으로 어길 국면에 처해있다. 한편으로 경기는 둔화국면에 진입한다. 이번 국면이 한은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시험대이며 우리나라의 안정적 경제성장에도 중요한 사건이다. 이번 금리 인상 후 한은은 질책을 듣고 있다. 그러나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이라는 특이한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한은이 당장 손을 들어버리고 스스로 결박을 푸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결박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버틸만큼 버텨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 적절한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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