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삼성 뒷다리잡기가 아니다

  • 등록 2005-10-07 오후 3:32:35

    수정 2005-10-07 오후 3:45:43

[이데일리 문주용 경제부장] 똑똑한 삼성맨들이 몰라서 묻는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좀 가르쳐달라." 이들에게 지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며 내놓는 정치적 타협안이 무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타협안은 또다른 임시변통으로 치부되거나 특혜 시비를 불러올 뿐이다.

일각에서는 삼성 논란에 대해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다른 기업들은 삼성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럴까? 기업들 대부분은 삼성 논란을 구경할 뿐이지 걱정안할 것같다. 삼성과 딴 기업은 입장이 너무 다른 까닭이다.

삼성 논란은 삼성이기에 발생한 논란이다. 삼성이 아니면 생기지 않는 논란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업으로서의 삼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을 보인 `삼성`이라는 실체에 관한 것이다. 또 시대적으로 본다면 이병철 회장 시대가 아닌 이건희 회장시대의 영광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 한계들과 관련된 것이다.

논란의 첫째는 편법 증여를 통한 경영권 변칙 상속 논란이다. 법적으로 옳고그름은 법원이 따질 문제라 차치할 수 있지만 , `법적으로 문제없다`식의 삼성 주장은 `윤리 경영`을 그토록 강조해온 이건희 회장의 잣대에는 크게 배치되는 주장인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의 행적에 비춰보면 최소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라는 정도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회장의 윤리경영에 대한 수준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보자. 지난 93년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때 이렇게 말했다. "시급한 것은 인간미와 도덕성의 회복이다. 도덕성을 회복하고 인간미를 살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또 이런 얘기도 한 적이 있다. "기업이 돈 잘버는 기계여서는 안된다. 도덕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회장의 윤리경영 철학에 비춰보면 윤리적 잣대와 법적 잣대를 뒤섞어서 논쟁할 이유가 없다. 또 기업윤리와 개인 윤리가 다를 까닭도 없다.

금산법 개정 논란도 이와 같다. 법적으로는 삼성 주장이 맞을 수도, 참여연대 주장이 맞을수도 있다. 중간에서 적당히 타협하자는 대통령의 생각이 현실에 부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 역시 단순명쾌하게 풀었어야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까지 하면서 초일류기업 도약을 위한 의식혁명을 주창한 이건희 회장이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순환출자구조를 통한 지배구조등에서는 변칙적 접근법을 그대로 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의 법으로는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법의 취지나 한국경제의 미래를 항상 걱정할 정도로 사려깊은 이건희 회장 이라면 그 충분히 긴 시간동안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삼성이 법리논쟁으로 뭉갤 게 아니었다.

삼성 논란의 근본적인 것, 즉 `삼성공화국` 논란도 역시 큰 얘기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비판적 시각은, 국가경제의 20%를 차지할 만큼 삼성이 `소인국의 걸리버`같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시각만은 아니다. 기업 규모의 확대 뿐아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정치에 대해 매우 관심이 컸다는 점, 정치자금을 적극 제공했고 정치권력과도 가까웠다는 점, 언론·문화 등 경제외적인 분야로도 영향력 확대를 적극 꾀해왔다는 점 등이 `삼성공화국`의 징후로 국민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95년 4월 베이징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정치, 행정 수준을 절묘하게 비유한데다, 국내 1위기업의 총수 발언이었기에 폭발력이 매우 컸었다.

이처럼 이회장의 발언록 등을 보면 이 회장은 정치, 행정등 경영의 외부환경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너머 이런 외부환경을 개선시켜야한다는 `애국주의자`같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래서 삼성의 정치자금 문제가 다른 기업의 경우와 달리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른 기업들의 경우 정치권이 손을 내미니까 `보험`든다는 생각, 사후에 이권을 챙길수 있겠다는 생각의 `비지니스적` 행동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X파일 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 삼성은 정치에 개입한다. 보험을 드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판에 영향을 미치려한다.

완벽경영, 무결점경영 스타일인 이 회장 경영방식은 기업 경영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룬게 사실이다. 이런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삼성은 경영의 주변환경인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에도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해왔다. 이것이 `삼성 공화국`의 실체다. 이런 공화국의 꿈은 다른 기업들은 꾸지 않았지만, 삼성은 이병철회장에서 시작해 이건희 회장때에 현실화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에 대한 반발, 외부의 경계심을 방치했다. 이 경계심이 국민정서라고 한다면 단순히 `잘난 놈`에 대한 질시같은 성격은 아닌 것이다.

삼성은 엄청난 성공을 거듭했고, 기업을 너머 공화국이라는 아성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속, 삼성차문제, 상호출자구조, 무노조 등 초일류기업이라면 논란거리에서 벗어나야할 문제들에 대해선 `의식혁명`수준의 해결방안을 찾지 못함으로써 `모순`의 상황을 맞았다.

삼성 문제를 이렇게 풀어야 한다는 식의 대안제시는 참으로 어렵다.

`잘못하지 않았느냐`고 정치, 사회가 삼성을 비판할 상황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삼성이 보지 않으려는 `어두운 면`을 겸허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 회장 경영체제의 훌륭한 성과뿐아니라, 정반대의 방향으로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도 보도록, 삼성맨들이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IMF위기를 겪고 탈권위·평등주의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국민들사이에 기업윤리에 대한 기대 역시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도 삼성맨들이 수용했으면 한다.

삼성 논란이 이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잘하는 사람 뒷다리잡기`가 결코 아님을 삼성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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