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10여 년간 회사에 다니며 국민연금으로 5000만원 가량 납부한 40대 직장인 A씨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올 때면 한숨부터 나온다. 가뜩이나 급여 명세서에 찍힌 연금 금액을 볼 때마다 적지 않은 납부액에 속앓이를 해왔는데, 내가 낸 연금을 지금의 60대보다 적게 받거나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 불안감도 크다. A씨는 “국민연금을 믿어도 되는 건지, 지금이라도 노후 대비를 위해 다른 연금 상품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라며 답답해했다.
|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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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돼 국민들의 주요 노후 대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를 보면 19세 이상 인구 중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67.4%였으며, 이중 절반 이상(59.1%)이 노후준비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규모는 1988년 5279억원에서 지난해 약 948조원으로 1800배 가량 급증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의 국민연금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 정부는 2018년 발표한 4차 재정계산을 통해 국민연금 기금 적자전환 시점이 2042년, 소진 시점은 2057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정부는 △2003년 1차 계산(2036년 적자, 2047년 고갈) △2008년 2차 계산(2044년 적자, 2060년 고갈) △2013년 3차 계산(2044년 적자, 2060년 고갈) 등 세 차례 재정계산을 발표했는데, 직전인 3차 재정 계산과 비교했을 때 적자 전환 시점은 2년, 기금 소진 시점은 3년 당겨졌다.
상황이 이러니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연금을 못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금이 소진된다 해도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세간의 우려처럼 국민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을 전망이다. 기금 소진이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데다, 설령 소진되더라도 국가의 지급 의무 자체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연금이 고갈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를 현재의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전가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1930년생 가입자의 국민연금 수익성이 1985년생 가입자보다 약 2.4배 높다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가입한 세대일수록 수급액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수)은 0.81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또 국내 총인구 감소 시기는 당초 예상(2029년)보다 8년이나 앞당겨지는 등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연금 재정은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위협받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이 예고된 상태에서 인구·경제 변화까지 반영해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신석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금포럼’ 기고를 통해 “4차 재정계산 이후 발생한 코로나19와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이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5차 재정계산이 엄밀히 수행되고 그 결과가 연금 개혁으로 이어져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