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픽사의 도움없이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치킨 리틀(Chicken Little)`이 11월 첫째 주말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치킨 리틀`은 지난 주말(4일~6일) 동안 총 4010만달러의 입장 수입을 거둬 개봉 첫 주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픽사와의 합작 3D 애니메이션인 `인크레더블`이 개봉 첫 주 704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디즈니가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디즈니는 1995년 스티브 잡스의 픽사와 제휴 관계를 맺고 이후 세계 3D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선도해왔다.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과 같은 쟁쟁한 히트작이 모두 픽사와의 합작품. 그러나 잇따른 성공으로 기세등등한 픽사가 디즈니에게 "배급료는 지불하되, 흥행 수입은 픽사가 단독으로 차지하겠다"는 새로운 계약 방식을 요구하면서 두 회사가 앞으로도 제휴를 이어갈 지 불투명하다. 때문에 이번 작품의 성공은 디즈니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평가받아왔다.
실제 디즈니는 최근 몇 년간 마음편치 않은 날을 보냈다. 경쟁사 드림웍스가 `슈렉` 시리즈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원조`의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데다, 지난 9월 퇴진한 마이클 아이스너 전 회장과 관련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만약 `치킨 리틀`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디즈니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치킨 리틀`은 전형적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다. 도토리 마을에 살고 있는 치킨 리틀은 머리 위로 떨어진 도토리를 하늘이 무너진다고 착각해 마을을 대혼란으로 몰고 간 전력이 있는 천덕꾸러기.
이 사건으로 치킨 리틀은 동네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아버지 벅 클럭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치킨 리틀은 땅바닥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마을 야구팀에 가입한다. 치킨 리틀은 갖은 고난 끝에 사랑스런 청둥오리 애인인 애비, 겁 많은 돼지 친구 런트 등의 도움으로 야구 시합에서 승리하고 위기에 처한 마을도 구한다. 결국 아버지와의 화해에도 성공하고 마을의 총아로 떠오른다.
`치킨 리틀`의 흥행 성공으로 디즈니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즈니마저 3D 애니메이션에 올인하는 모습이 썩 반갑지는 않다.
애니메이션 원조 디즈니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 손으로 일일히 수작업한 전통적 셀 방식의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히트작을 양산했다.
나이 많은 어른들도 익히 알고 있는 `피노키오`,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같은 고전은 물론이요, 1990년대 디즈니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어공주`,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이 모두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
디즈니는 `보물섬` 등 2000년대에 만든 셀 방식의 애니메이션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자 사실상 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폐쇄한 상태다. `아날로그→디지털` 이란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디즈니가 가장 잘했던 분야에서 손을 떼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일까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푸념에 불과하겠지만 `인어공주`,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디오 테이프(DVD가 절대 아님)가 늘어질 때 까지 보고 또 보고, 주제가 가사까지 일일이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디즈니의 작품이건, 드림웍스의 작품이건 요즘 3D 애니메이션 히트작에서는 과거와 같은 감동을 못 느낀다면 지나친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