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묻지마 범죄’ 폭증
버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자는 맨해튼에서 웬만하면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걷는 버릇이 생겼다. 지하철 역사 내부가 어둡고 음침한 데다 스크린도어 같은 안전시설이 없는 탓이다. 지하철 내 바닥에서 누워 자는 이들까지 볼 수 있다. 겉보기에 800만 뉴요커들의 ‘혈맥’이지만, 그 안을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맨해튼에 사는 한 지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하철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위험한 뉴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새삼 강조하는 건 이유가 있다. 최근 그 표적이 갑자기 아시아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인 미셸 고(40)씨는 지난달 15일 맨해튼 한복판 타임스스퀘어 인근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떠밀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지난 13일 한국계 크리스티나 유나 리(35)씨는 지하철역 근처부터 뒤를 밟은 흑인 노숙자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둘 모두 원한 관계라고 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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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경찰(NYPD)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는 2020년 28건에서 지난해 131건으로 늘었다. 아시아계는 신고 혹은 보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뉴욕에서 6년 넘게 살고 있는 중국계 여성 유미 린(27)씨는 NBC에 “최근 살인 사건을 보면서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이라며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필리핀계 여성인 글로 린덴무스(29)씨는 “가방에 항상 페퍼 스프레이(최루액을 분사하는 호신용 기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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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지 않은 범죄의 이유
경찰 예산의 감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경찰 예산이 줄었다”며 “이는 살인율을 높이는데 영향을 줬다”고 했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 역시 나온다.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여성포럼의 성연 초이모로우 국장은 NBC와 인터뷰에서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공격은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에 의해 번진 인종 차별 메시지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가 주로 지적한 건 백인에 의한 차별이다. 이와 동시에 최근 아시아계는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 운동 때 적극 도왔음에도 흑인사회가 이번에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작지 않다. 실제 ‘아시아인 목숨은 소중하다’(ALM) 운동은 크게 번지지 않고 있다. 아시아계를 향한 가해자가 주로 흑인이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종 관련 교육을 정착시키지 않는 한 증오 범죄 해결은 요원하다는 게 초이모로우 국장의 진단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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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와 의회는 조금씩 움직이는 기류다. 일단 손에 잡히는 안전 정비부터 나서고 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과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지난 18일 로어맨해튼의 한 지하철역에서 ‘지하철 안전 계획’을 서둘러 내놓았다. 지하철 내에서 약물 복용과 흡연을 막고 자는 노숙자를 끌어내겠다는 게 골자다. 애덤스 시장은 “지하철을 타는 두려움이 뉴욕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계 데이브 민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최근 인권단체 ‘아시안 증오 범죄를 멈춰라’(Stop AAPI Hate)와 함께 대중교통 증오 범죄를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