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달러/원 환율이 지난 2월25일이후 8개월만에 최고인 1142.90원까지 급등한 뒤 결국 1137원대로 뚝 떨어지며 거래를 마쳤다. 앞으로 환율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과정에서 국제투기자본의 원화공격설이 나돌기도했고 이에 대한 반박논리도 등장했다. 정부는 장중반까지 불안심리가 확산되자 "환율상승은 국내 외국인 투자자들의 헤지수요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일 뿐 투기세력과는 전혀 관계 없다"고 일축하며 진화에 나섰다.
◇환율흐름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무려 4.60원이나 높은 1141.9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전날밤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는 1148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역외세력의 달러매수세가 강했다. 이후 환율은 꾸준히 오름세를 지키며 2시2분쯤 1141.90원까지 급등했으나 달러매수초과(롱) 포지션을 유지해온 은행들이 차익실현을 위해 매물을 내놓고 역외세력도 일부 달러매도에 나서면서 서서히 하락, 3시42분쯤엔 1137.50원으로 급락하기도했다. 이날 종가는 전날보다 40전 높은 1137.70원.
오후장 초반 환율이 급등할 때까지 역외세력의 달러매수에 따른 불안심리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이후엔 미국증시 급반등을 기대하며 롱포지션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시장을 압도했다. 환율급등때 실제 달러수요가 그리 많지않았던데 비해 하락할 때는 고점매도에 나선 기업들과 은행들의 물량이 상당히 많았다. 전반적인 공급우위로 볼 수 있는 요인들이다.
◇막판 환율이 하락한 이유
이날 환율이 마감을 앞두고 급락한 것은 몸이 무거운 외환시장 자체의 수급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은행들이 역외세력의 매수세에 편승, 달러사들이기에 적극 나서며 달러매수초과포지션을 갖고있던 상태에서 미국 나스닥선물지수의 급등은 무척 부담스런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은행들로선 당장 오늘밤 뉴욕증시가 급반등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달러를 들고 하루밤을 지낼 수 는 없었던 것.
시중은행 한 딜러는 “오후들어 역외세력이 관망세를 보이기는 했으나 소규모 달러매수는 꾸준히 있었다”며 “우리 외환시장이 미국증시등 외부변수에 여전히 민감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역외세력 동향, 가볍게 볼 것인가
이날 역외세력은 장중에 달러매수에 나섰지만 그 규모는 크지않았다. 오히려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한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또 1137원대까지 환율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역외세력 일부가 달러를 판 것을 두고 ‘그들이 더 버티지못하고 매도로 전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역외세력이 향후 환율전망을 원화 강세, 즉 환율하락쪽으로 바꾸었다고 이해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역외세력은 최근 국내시장에서 관망세를 보이다가 장마감후 열리는 역외선물환시장에서 과감한 달러매수로 환율을 끌어올렸다. 지난 17일 밤에는 국내종가보다 5원가량 높은 1138원수준으로, 18일 밤에는 국내종가보다 10원가량 높은 1148원 수준으로 환율을 끌어올린 바 있다. 물론 이런 다소 무리한 움직임의 이면에는 환차익을 노리는 투기심리와 함께 미국증시의 약세가 한몫했다.
19일밤 역외시장에서 역외세력의 움직임은 미국증시와 밀접하게 연계될 전망이다. 아무리 투기적 매수를 선호한다하더라도 조건이 갖춰지지않은 상태에서 무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측키 힘든 변수다.
◇과연 국제투기세력의 원화공략은 가능한가
이에 대해 정부는 단호하다. 재경부 고위당국자는 "97년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해외 환투기 세력이 거의 몰락, 이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다"며 "최근의 대만달러의 급격한 절하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수요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외 경상거래에서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등 안정적인 외환수급이 이뤄지고 있어 동남아 통화나 유로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딜러들도 이 점에 대해선 어느 정도 수긍하고있다. 아직까지 달러수급측면만 놓고보면 환율이 급변동할 이유가 많지않기 때문이다. 또 설사 투기세력의 공격이 있더라도 97년 외환위기때와 달리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아 대응여력이 생겼다는 점도 인정하고있다.
그러나 과연 지난 6일이후 지속돼온 외국인들의 주식매도공세가 19일 134억원 순매수로 급반전한 것인지 불투명하다. 구조조정 지연에 대한 불안이 여전하고 동남아통화와 대만달러의 추락이 지속되는등 시장주변여건도 취약하다. 대우차와 한보철강 매각무산등으로 외국인 직접투자자금 유입도 기대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투기세력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환율이 좀 더 오를 여건은 충분하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환율안정에 대한 당국의 의지는 인정하지만 시장의 불안심리를 과소평가할 이유도 없다”며 “우리경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여건을 조성하는게 환율안정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