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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값 아까우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말도 안통한다. 바닥으로 거꾸러지는 경기는 아랑곳 없이 대중교통비는 어김없이 오름세다. 맨해튼 지하철 일반 요금은 2달러로 유지됐지만 주간 및 월간 티켓 가격은 3월들어 각각 1달러, 5달러씩 올랐다. 버스 요금도 오를 태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발 주택 경기침체와 신용 위기, 고유가 3대 악재가 실물 경제 깊숙히 파고들면서 미국 전체가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생필품 가격 급등.."Everything is going up"
간호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루이지애나주의 빌리 로메로(32). 그녀의 바람은 소박하다. 내집 마련과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러나 최근 경기가 나빠지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앞길이 막막해졌다.
로메로는 "월급 빼고 다 올랐다"며 "집도 없는데 자동차도 팔아야 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그녀는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결혼 생활마저 흔들리고 있다"며 "이혼율이 왜 치솟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소비의 천국` 미국이라지만 빠듯해진 가계부 앞에서는`절제의 미덕`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경기 둔화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무조건 반사적이다. 절실히 느낀다는 것. 무엇보다 물가 상승이 뼈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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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뉴욕에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인 거슨 고메즈(34)씨는 "모든 물건의 가격이 다 올라서 살기가 어려워졌다"며 "경제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펠리세이드 파크의 한인 교포 윤은정(30)씨도 "장보러 가기가 무섭다"며 "4인 가족 기준으로 예전에는 100달러어치 장을 보면 일주일을 버텼는데 지금은 사흘을 못간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6%. 경기후퇴(recession)의 정의가 GDP 증가율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수치상으로는 아직 경기가 후퇴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의 경기 체감온도는 `영하권`이다.
와코비아의 마크 비트너 이코노미스트는 "통계상으로는 경기 둔화가 비교적 완만한 수준이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지난 1980년대초 이래 가장 춥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지난 1980년대초 이래 사상 최저 수준이다. 와코비아의 아담 요크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 급등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스테이크 대신 치킨을 구입하는 등 값싼 대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집 잃고, 직장 잃고..`굿바이, 아메리칸 드림`
사상 최악의 주택시장 거품 붕괴는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연상시킬 정도다. 잔디 깔린 근사한 하우스로 대변되는 `아메리칸 드림`은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로 돌변했다.
모기지업체들의 꼬임에 빠져 여유자금을 주택시장에 `올인`한 뉴저지 포트 리의 엘리스 리(40)씨는 요즈음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돈 생각에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고는 잠을 못이룬다.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집 세 채 가격이 모두 폭락했기 때문.
이씨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모기지를 제때 갚지 못해 아예 살 집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텍사스 포트 워스의 제니퍼 잭(31)씨는 지난해 모기지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포기했다. 최근에는 자동차 보험도 끊었다.
칼바람이 휩쓸고 간 고용시장도 얼어붙었다. 올해 들어 8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잘 나가는 지멘스의 소프트웨어 개발 이사였으나 대규모 감원 열풍에 휘말려 13개월째 파트 타임직을 전전하고 있는 마크 체레이스너씨는 "기업들이 고용을 미루면서 일자리가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좋은 자리가 나도 수 백개의 이력서들이 몰려들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토로했다.
중소 상인들도 어려운 사정은 매한가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셰넌 맥컬리(28)씨는 매출이 50% 격감해 죽을 맛이다. 경기 한파에 사람들이 외식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맥컬리씨는 "비용을 줄이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감당할 수가 없다"며 "날아드는 비용 청구서를 맞추기 위해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한도에 다다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