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회사의 경영 방침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사가 해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와 함께 기업지배구조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검찰당국은 HP가 이사들의 통화 내역을 불법 취득한 것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토마스 퍼킨스 이사의 이사직 사임과 관련해 HP의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美 검찰, 이사 통화내역 불법취득 조사 착수
문제의 씨앗은 지난해 뿌려졌다.HP는 지난해 이사회 회의 내용이 계속해서 언론에 유출되자 외부 업체를 채용해, 이사들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다. 결국, HP 이사회는 지난 5월18일 이사회 회의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조지 키워드 이사에게 이사직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키워드 이사는 자신이 주주들에 의해 선임된 만큼 스스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버텼다.
이런 가운데, 키워드 이사의 사임 문제를 둘러싸고 또 다른 이사인 톰 퍼킨스가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던 패트리샤 던(53·사진)의 문제 처리 방식을 놓고 반발해 회사를 떠났다.
퍼킨스 이사는 회사측이 이사 개인의 통화 내역을 ‘프리텍스팅’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프리텍스팅’이란 고객을 가장해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 통화 내역을 몰래 빼내는 것을 말한다. 미 의회는 ‘프리텍스팅’ 금지 법안을 승인했고, 미 연방통신위원회(FTC)도 ‘프리텍스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회사측은 또 통화 내역에 대한 조사가 위법인지 여부에 대해 법률 자문을 구했으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피오리나 축출 과정 암투 의혹..이사회 독립성 훼손 우려
HP가 이사들의 통화 내역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칼리 피오리나 전(前) 최고경영자(CEO)의 축출과 무관하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피오리나가 대외적으로 뛰어난 커리어 우먼으로 알려져 있지만, HP 이사회 내부에서는 “오만한” 이사회 운영 방식과 경영실적 문제로 인해 이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피오리나가 이사회 의장 겸 CEO 직에서 물러난 직후, 던은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고 동시에 이사회 정보 유출에 대한 정밀 조사를 들어갔다.
퍼킨스(사진) 이사는 내부 정보 유출에 대한 조사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과 관련해 “던 의장이 나를 배신했다”면서 “우리는 정보 유출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대내적으로 합의했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퍼킨스측 변호사인 비엣 딘은 “퍼킨스 이사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의견 차이로 스스로 이사직에서 물러났다”면서 “회사측은 지난 몇 개월간 이 같은 의견 차이에 대한 공시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던 의장은 “사태가 이처럼 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이사회는 이사들의 내부 논의 사항에 대한 비밀엄수가 유지돼야만 유지될 수 있다”고 내부 정보를 유출한 이사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마켓워치는 “HP 스캔들은 이사마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사가 회사의 경영방침과 의견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사임해야 한다면 이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