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BMW가 아니라 롤스로이스..한없이 부드러운 X7 M50d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홍성국 기자=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Sheer Driving Pleasure) BMW는 ‘궁극의 달리기 머신’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강력을 성능을 내세운 차를 만들었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운전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요즘의 BMW에서는 액셀레이터를 전개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아드레날린, 베일 듯 날카로운 칼날같은 코너링의 아찔함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 순수함의 결정체였던 3시리즈는 뒷좌석이 편해질 정도로 커지면서 비둔해졌다. V8 엔진까지 라인업을 확장해 강인함을 상징했던 5시리즈도 지금은 그저 부드러운 럭셔리 세단일 뿐이다(단지 M만이 이런 즐거움이 남아 있다). 럭셔리 세단이 왜 이렇게 단단해라는 혹평을 자아냈던 7시리즈 마저 롤스로이스에 버금가는 승차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형국이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서 궁극의 달리기 머신으로 남아 있을 것 같던 BMW는 속세와 손을 잡았다. 일단 살고 봐야하지 않겠냐는 마음 아픈 변명도 나왔다. 요즘 소비자의 대부분이 달리는 머신보다는 럭셔리한 편안한 차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어렸을 적 BMW 머신에 대한 경외심까지 느끼기도 했던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우리들이 꿈꿨던 그 머신보다 요즘 신차가 더 쉽고 빠르고 더 안전하며 안정적이다. 그러나 어릴 적 우리는 한시 바삐 움직이는 손과 발로 차와 하나가 되어보고 싶었다. 그 꿈나무들에게 지금의 BMW는 가혹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거대하다 웅장하다..다만 익숙해짐이 필요하다

X7은 거대한 키드니 그릴이 존재감을 뽐낸다. 한 눈에 봐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워낙 큰 그릴 때문에 맨드릴 개코원숭이의 얼굴이 연상된다는 악평도 나온다. 안개등 윗쪽부터 에어벤트까지 연결된 ‘ㄱ’자의 크롬라인은 차를 높고 거대하게 만들어 준다. M스포츠 패키지인 만큼 레이저 헤드램프에 푸른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육중한 덩치에 걸맞게 22인치 V형상으로 수를 놓은 휠이 들어갔다. 그 사이에는 M 로고가 선명히 박힌 브레이크 캘리퍼가 보인다. SUV 답게 휠아치도 넉넉하다. 워낙 큰 차체 때문에 휠이 커 보이지 않을 정도다. 측면에 전체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라인이 차를 날카롭고 길게 만들어준다. 에어브리더부터 트렁크까지 길게 크롬으로 이어진 사이드 몰딩은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엄청나게 거대한 차체를 가졌음에도 전체적인 비율이 우둔해 보이거나 굼떠보이지 않는다. 되려 이 큰 차체가 날렵해 보이기까지 한다. 바깥으로 꺾여있는 C필러의 형상(호프 마이스터 킨크)도 달려나가는 차의 잔상이 남듯 날렵함을 살려준다.

전체적으로 우아하면서 날렵한 모습의 X7이지만 후면은 넓고 높은 형상때문에 우둔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운데 길게 이어진 크롬바는 7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차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항아리 모양으로 커진다. 안정감을 주지만 날렵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아랫쪽에 차폭등과 반사판이 위치한 곳은 약간 생뚱맞다. 연지곤지를 찍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아랫쪽에 볼록 튀어나오는 하단 범퍼는 옆에서 봤을 때 더욱 부각된다. 툭 튀어나온 턱 같다.

실내 인테리어는 1억원이 넘는 차 가격에 부합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엔 가죽이 들어갔다. 천장은 고급스런 블루 컬러의 알칸타라 소재로 덮였다. iDrive컨트롤과 12.3인치 터치스크린은 사용하기에 좋다. 오디오 볼륨 등 제스처 컨트롤은 운전하면서 한 두번씩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크래프티드 클래어리티 글라스가 적용된 기어노브는 고급감의 절정을 보여준다. 다만 덕분에 P 스위치가 기어노브 뒷쪽으로 이동했는데 버튼을 누르기 영 불편하다. 센터 콘솔 크기도 적당히 넓어서 물건을 수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상하게 이 차 운전석에 적용된 시트는 편안한과 다소 거리감이 있다. 허벅지 지지대를 늘리면 아랫부분에 공간이 생겨서 이질감이 느껴지고 럼버서포트의 위치도 몸을 착 감아주지는 않는다. 다만 사이드 볼스터가 조여지는 범위는 꽤 커서 몸에 맞추기에 적절하다.

뒷좌석도 시트의 조정범위가 넓어서 편하게 장거리를 가기에 무리가 없다. 바닥판을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4륜구동 모델임을 감안하면 꽤 칭찬해줄만한 부분이다. 2열과 3열에도 각각 공조장치 컨트롤러가 있다. 5존 독립 공조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는 점도 꽤 특이하다.

2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터치스크린으로 중앙에 마련된 CD 투입구를 통해 DVD 영화를 시청할 수도, BMW 커넥티드를 이용해 뉴스를 볼 수도 있다. 3열 시트는 어른이 탑승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어린이가 아니라면 비상시 사용이 정답이다.

다만 조수석 의자 앞쪽에 소화기는 생뚱맞다. 차량 내 화재 발생시 소화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트렁크에 두거나 시트 밑으로 숨길 수 있었는데 굳이 저렇게 내놓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손잡이도 아무런 커버 없이 드러나 있어서 가방 끈이 걸리거나 옷이 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위치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분개한 사자의 포효,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얌전한 몸놀림

너무나도 바빴던 하루.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경적소리에서 벗어나 조금은 쉬고싶은 퇴근시간 언저리. 차에 몸을 싣고 문을 닫자 하루의 고난이 아득히 멀어진다.

엔진 시동을 걸었다. V6 디젤은 무 조용하다. 그르렁 거리는 성난 사자가 살며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다. 마치 사냥감에 다가가기 전 숨을 죽인 듯하다. 살포시 액셀레이터에 발을 갖다 대자 조용하지만 부드럽게 차가 출발한다.

주차장을 나와 서울 시내의 복잡한 도로로 나섰다. 소형 버스만한 이 녀석을 빽빽한 자동차들 사이에 어찌 넣을지 잠시 고민이 된다. 이내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가다서다를 수백번 반복한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 기능을 활용해서 잠시 긴장했던 발목을 풀어준다. 중앙을 유지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차선 인식도 탁월해 꽤 믿음직 스럽다.

다만 차선이 복잡해지거나 잠시 끊겼다가 연결되는 커브길에서 이상한 차선으로 운전대를 틀어 당황하게 한다.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틀려고 해도 워낙 간섭하는 힘이 강력해 쉽지 않다. 길이 깨끗한 고속도로가 아니라면 운전대를 꽉 쥐고 운전해야 한다.

음악 소리를 높였다. 고음부터 저음까지 모든 영역에서 탄탄하다. 바워스&윌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은 저음이 약간 강조되어 있는 느낌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공조장치도 7시리즈에 들어가 있는 터치 방식이 아닌 물리버튼이라 사용이 훨씬 용이하다. 그러나 버튼이 오밀 조밀한데다가 작아서 누르기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주행 질감은 너무 부드럽다. SUV인데다가 M을 곳곳에 붙인 녀석이라 단단하리라 생각했다. 한없이 높은 과속방지턱이건 울퉁불퉁한 도로건 철저히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물렁하지는 않다. 불필요한 요동은 철저히 배제한다. 고급스러운 승차감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기어노브 뒷쪽에 M 뱃지로 이 차가 M50d 라는 사실을 겨우 기억해냈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엑셀을 거세게 밟자 시동걸 때 잠시 보이던 사자가 나타났다. 우렁찬 포효와 함께 차가 사정없이 전방으로 돌진한다. 엔진 회전질감도 결코 디젤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상당히 부드럽지만 우렁찬 엔진음을 뽐낸다.

아드레날린이 분비 되며 얼굴에선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나온다. 브레이크도 충분히 강력해서 3톤에 가까운 이 탱크를 붙잡아 세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브레이크에 적용된 에너지 재생기능 탓인지 약간의 이질감은 느껴진다.

그러나 이내 안전한 스릴이 아닌 두려움에서 기인한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시작했다. 꽤 굴곡률이 심한 코너를 높은 속도로 진입하자 이 무거운 차체를 버티지 못하고 앞바퀴가 사정없이 밀리기 시작한다. 후륜조향과 적재적소에 개입한 전자장비의 도움으로 무사히 제 라인을 찾아 코너를 빠져나갔다.

변화를 시작한 BMW

X7 M50d의 M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 무거운 차가 지구상의 모든 물리법칙을 거스르고 칼같은 코너링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운전자가 원할때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내주고 그만큼 강한 브레이크로 안전을 보장한다. 혹여 운전자가 급박한 상황에 들어가도 운전자의 의중을 파악하고 젠틀하게 전자장비를 개입시켜 꽤 훌륭하게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이 차에 붙은 M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혹자가 M에 기대하는 그런 성능을 기대하면 안 된다.

X7은 옛날 BMW의 SUV에서 느꼈던 단단함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되려 롤스로이스의 컬리넌과 같은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자랑한다. 응당 BMW에게 기대하는 단단함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운전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변화다. 하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사항에 맞춰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BMW도 더 넓고 부드러운 차를 원하는 많은 소비자들에게 맞춰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꿈나무들이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BMW가 아직 ‘M’이라는 고성능 디비전을 통해 ‘순수한 달리기의 즐거움’을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