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29)대통령이 중요하다

  • 등록 2007-01-31 오후 1:41:43

    수정 2007-01-31 오후 1:41:43

[이데일리] “… 다만 그린벨트에 손대는 건 대단히 어렵다. 대통령이라 해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 … 그린벨트 해제는 그야말로 필요성이 극도로 높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하는 것이지, 약간 필요하다, 이런 걸 로는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 부산이 제조업 기지까지 그린벨트를 풀어서까지 꼭 가져야 하는 구상은 불편해도 신중히 하자.”

지난 연말 부산 북항 재개발계획 보고회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항만기능이 신항으로 옮겨간 북항 터 80만평을 상하이나 두바이와 같이 초고층빌딩 중심의 상업지구로 재개발하겠다는 부산시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북항은 ‘너무 개발되면 돈 없는 서민들이 못 오는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산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친수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대통령으로부터 그린벨트 해제와 국고지원 등 풍성한 선물을 기대했던 부산시의 기업인들로서는 실망스러운 발언이다. 그러나 개발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시민을 위한 지역개발을 바라는 부산시민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또 지난 4일 올해의 경제운용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수도권 내 공장증설은 당장의 경쟁력을 보면 필요해 보이나 먼 장래로 보면 수도권 집중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며 경기도 이천시의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증설에 필요한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이 역시 수도권 주민들로서는 실망스러운 발언이지만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는 충북 청주시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갈등을 대통령의 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갈등관리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 이 권한은 장관 등 고위공무원들의 인사권을 통해 행사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정책결정 과정을 통해 행사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제도개선이나 예산편성으로 연결되는 행정명령의 효력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한다.

공무원과 정치인, 기업인들은 주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주민과 시민단체, 종교인들은 주로 청와대나 정부청사 앞에서 집회와 시위, 단식농성 등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통령의 결단과 선물에 의존하려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충남 서천군 장항 개펄 374만평을 매립해서 산업단지로 개발해도 좋으냐 아니면 보존해야 하느냐의 의사결정은 환경부장관의 권한과 책임이다. 그래서 환경부는 법이 정한 협의절차에 따라 사업의 재검토를 결정하고 사업자에게 통보하려 했으나 국무조정실의 요청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갯벌을 개발하려는 건설교통부나 보존하려는 환경부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무조정실이 개입한 것은 법이 정한 절차다. 그러나 군수가 정부청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수천 명의 주민들이 서울과 현지에서 집단시위를 벌이며 갈등이 확산된 배경에 대통령의 현장 방문이 불씨를 제공했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 측면에서 최종결정권자의 결단은 갈등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갈등의 당사자들 모두 최종결정권자만을 바라보며 갈등해결의 권한과 책임을 전가하는 단점도 있다.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모든 갈등을 최종결정권자가 해결할 수는 없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 과정에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협상과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예방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갈등의 당사자들이 대통령과 장관, 도지사와 시장 등 최종결정권자의 결단과 선물에 의존하는 갈등해결 시스템은 효율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학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green@bunjaeng.com)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갈등조정특위 간사
-前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
-前 대통령비서실 환경비서관
-前 경기도 의왕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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