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제는 수요자 중심의 분양시장 재편이라는 '당의정'으로 포장돼 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청약과열을 막기 위한 고육책에 지나지 않는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2004년 2월3일, 후분양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주공 등이 짓는 공공아파트는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후분양제를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2007년에는 공정 40%, 2009년에는 60%, 2011년에는 80%가 지난 뒤에 분양하도록 한 것이다. 민간의 경우 후분양제를 선택하면 택지 우선공급권과 국민주택기금을 우대하기로 했다.
◇왜 후분양제인가 = 정부는 당시 후분양제 도입 이유로 주택시장 안정과 소비자 중심의 주택공급 질서 확립을 들었다. 청약과열로 인한 집값 상승을 피하고 수요자의 선택 폭을 넓혀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건교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최종찬 건교부 장관은 후분양제 도입에 따라 건설업체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문제, 주택공급이 위축되는 문제 등을 검토한 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재건축에 후분양제를 전격 도입한 이유는, 분양권 전매제한(2002년 3.6조치, 6월부터 적용)조치에도 불구하고 청약시장 과열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서울 동시분양 경쟁률은 4차 178.3대1, 1차 50대1, 5차 40대1, 2차 24.8대1 등을 기록했다.
이처럼 분양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도입된 후분양제는 ▲지어진 집을 보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분양 사기를 당할 염려가 없고 ▲모델하우스를 설치하지 않아도 돼 분양가가 낮출 수 있으며 ▲공사비가 확정되는 단계여서 분양가가 부당하게 책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포인트 = 그렇다면 후분양제는 선분양제에 비해 수요자에게 유리한 제도일까. 우선 시세차익 측면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선분양제 하에서는 공사기간(2년-2년6개월) 중 오르는 집값 상승분을 분양 받은 사람이 가져가지만 후분양제는 분양업체가 고스란히 가져가게 된다. 인기지역의 분양권 웃돈은 분양가의 2배가 넘는 경우도 있다.
분양가가 상승하는 문제도 있다. 건설업체가 공사비를 빌릴 경우 그에 따른 금융비용이 전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기간 중에 오른 가격까지 분양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공급위축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 80%까지는 건설업체의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신용이 떨어지는 중견업체의 경우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중견업체가 퇴출되면 공급부족 사태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후분양제는 주택보급률이 120-130% 수준에 달하고 자가주택보유율이 70%를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정착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선진국 시장이 이를 보여준다.
한 전문가는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분양방식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회적 손실만 커지게 된다"며 "서울시의 후분양제 도입 방침은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