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란 물가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된 결과로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으로까지 물가상승이 확산돼 전반적인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경제주체들의 예상을 의미한다.
이런 기대심리가 만연할 경우 경제주체들은 자신들의 여유자금과 소득의 실질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소비를 앞당기거나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투자에 나서게 되며, 이는 결국 물가와 실물자산 가격상승을 부추기게 된다.
비용이나 수요 같은 물리적 요인에 더 해 심리적 물가상승압력까지 가세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통제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우려다.
한은의 '기대 인플레 경계론'은 노골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에 대한 대응논리로도 읽힌다. 물가불안 심리가 누적되고 있는 와중에 한은마저 돈을 풀겠다고 나서면 인플레 기대심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 2월 금통위 "경계경보" 발령
인플레 기대심리에 대한 경계경보는 지난 2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발령했다.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물가와 관련, "올해 상반기중에는 지난 몇달동안과 같은 높은 상승률이 지속되겠지만, 하반기로 가면서는 내려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제성장도 "전체적인 전망이 아래쪽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높아지는 인플레 기대심리..한은, 매파로 회귀
결국 금통위는 다음달 회의에서도 시장 기대와 달리 금리동결을 결정했고, 이 총재는 금리인하가 불가능한 4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대 인플레이션은 1분기중 3.4%에 달했다. 전분기 2.8%에 비해 큰 폭으로 뛰어 물가안정목표 상한선(3.5%)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일반인들의 기대인플레이션도 1분기중 3.3%를 기록해 지난해 하반기 2.8~3.0% 수준에 비해 대폭 높아졌다.
◇ "인플레 기대 못잡으면 물가 예상범위 이탈"
앞서 지난달 28일 발표한 `2007년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은 "경기상승 국면이 지속돼 기업의 가격 전가가 쉽거나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의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고하지 않으면, 국내 물가에 미치는 국제유가 상승의 간접효과가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물가안정에 대한 한국은행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때라는 의미를 담은 것.
◇ "기대심리의 물가영향력 3배나 커"
1일 한국은행은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는 보고서까지 냈다.
과거 인플레이션이 어떠했는지보다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현재 물가에 3배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개방경제 뉴케인지언 필립스 곡선'을 개발, 이를 토대로 지난 1972년 2분기부터 2005년 3분기까지 실증분석을 한 결과다.
보고서는 "물가안정의 핵심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라고 결론 지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은 금융경제연구원 김배근 과장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비용이나 수요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설명해왔지만,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맞는 모델에 따라 분석해본 결과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커질 수록 수요와 공급 곡선이 이동해 물가가 더 오를 수 밖에 없다"며 "가격지표에 후행하는 심리 특성상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물가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한은 입장에서는 이같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경계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공동락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인플레라는 것이 경제가 발전하고 순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이 과정에서 기대만큼 치명적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물성장을 동반하지 않는 가운데 결국 물가만 오른다는게 필립스 곡선의 본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감을 견제하는 것이 인플레를 잡는 데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