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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부원장으로 보임되기 전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때인 2004년경부터 피해자 B씨(1975년생)를 알고 지내면서, 공동으로 수행하는 연구과제에서는 지휘·감독 관계에 있었고, 함께 해외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A씨는 2013년경 B씨와 내연관계를 시작했다.
2019년 8월 16일 오후 11시경 B씨는 A씨의 거주지인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성적인 행위를 했는데, 뇌출혈이 발생해 스스로 몸을 가누거나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A씨는 즉시 119에 신고하거나 피해자를 응급실로 후송하는 등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
A씨는 피해자와 내연관계인 사실이 발각돼 사회적 지위가 실추되고, 가족과의 관계도 파탄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 무렵부터 약 3시간 동안 피해자의 몸에 묻은 토사물을 씻어내기만 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씨는 2019년 8월 17일 오전 2시경 피해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오전 6시가 넘어서야 피해자를 응급실에 데려갔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에 대한 구호조치 의무를 이행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B씨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피해자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B씨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하고, 그때부터는 책임을 면할 방안을 생각하며 B씨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오는 등의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살해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상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무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119에 신고하고 119구급대의 지시에 따르는 것 등과 같은 구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피해자 사망의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인 119에 신고하는 조치 등을 이행하지 않아 피해자 사망의 결과를 초래했다”며 “피고인이 119에 신고하는 조치 등을 하지 않은 부작위와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나 “피해자와 내연관계 등이 드러나 A씨의 명예나 사회적 지위 등이 실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피해자를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므로 미필적인 살해의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전문심리위원의 설명이나 의견에 관한 증거법칙을 위반하거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인과관계, 부작위와 작위의 동가치성, 고의, 보증인적 지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