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미국 CBS 방송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무대로 범죄 현장의 자잘한 증거를 수집, 과학적으로 분석, 범인을 잡아내는 `CSI`라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높은 인기 덕에 방송 광고가 급신장하기도 했다.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을 보도,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장본인도 CBS의 유명한 시사고발 프로 `60 Minutes`다. CBS의 간판 앵커 단 래더는 이라크 전쟁 직전 후세인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식 축구 대회 `수퍼볼`에서 가수 자넷 잭슨의 가슴 노출 사건을 일으킨 방송국도 다름 아닌 CBS다.
CBS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철저하게 상업적이면서도, 미국의 양심을 얘기하는 수준 높은 보도 프로그램도 많다. CBS의 자아분열적인 모습을 대변하듯이 멜 카마진 사장과 섬너 레드스톤 회장은 물과 기름처럼 갈라져 융합하지 못했다.
◇CBS와 바이아컴의 만남
CBS를 장악한 카마진 사장은 경쟁사인 NBC나 ABC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컨텐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카마진은 70년대 한몸이기도 했던 바이아컴에 추파를 던졌다. 방법은 이전에 그가 써먹었던 수법과 비슷했다. 바이아컴의 UPN 방송과 CBS의 케이블 방송을 맞교환하자며 레드스톤 회장을 꼬드겼다.
월가에서는 방송과 영화 컨텐츠의 결합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경기 방어 능력이 극대화된다. 통상 경기가 하강하면 방송 광고 매출은 떨어지게 된다. 반면 영화 극장의 티켓 수입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방송 미디어와 영화 컨텐츠는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면 방송을 통해 집중적으로 광고를 한다. 성공한 영화는 TV를 통해 몇번이고 방송, 재활용할 수도 있다.
1999년 8월 카마진은 레드스톤의 사무실 문을 두들긴다. 레드스톤은 그러나 3번이나 카마진과의 약속을 취소한다. 이유는 다른 일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레드스톤은 CBS를 그저 그런 방송사로만 생각했다. CBS의 강력한 방송 네트워크와 라디오 기지국, 옥외 광고판, 하워드 스턴같은 인적 자산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중에야 인식하게 됐다.
CBS는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사다. 바이아컴은 헐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와 MTV를 기반으로 국제적인 미디어 그룹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둘이 합친다면 당장이라도 미디어 제국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마진은 카마진대로 노림수가 있었다. 레드스톤 회장은 뚜렷한 후계자가 없다. 카마진은 "시간은 자신의 편"이기 때문에 어쩌면 CBS를 손아귀에 넣은 것보다 훨씬 간단하게 바이아컴의 CE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마진과 레드스톤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다른 칼라를 가지고 있었다. 유일한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일주일 내내 일한다는 것이다.
CBS와 바이아컴은 700억달러 규모의 합병을 선언한다. 레드스톤이 CEO를, 카마진은 COO 역할을 맡기로 했다. 카마진의 특기인 라디오 부문은 그의 지휘를 직접 받게 됐다. 카마진은 레드스톤이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CEO가 된다. 더구나 18명의 이사중 14명의 동의를 받아야만 해고가 가능했다. 카마진은 이사 8명을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
레드스톤은 카마진이 요구한 계약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카마진이 인피니티를 CBS에 팔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바이아컴이 CBS를 인수하는 것이지만, 카마진은 당당하게 `차기`를 보장받았다.
카마진은 양사가 합병한 후 매년 모든 사업 부문이 20% 씩 성장해야만한다고 강조했다. 카마진이 바이아컴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레드스톤은 무슨 생각으로 카마진의 요구를 다 들어준 것일까. 레드스톤은 합병 직후 "바이아컴을 위해 CBS를 프리미엄없이 인수했고, CEO로서의 지위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레드스톤은 합병 바이아컴의 최대주주다. 레드스톤은 카마진이 CEO 자리에 올라서려면 어쨌든 나를 넘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시너지
CBS는 토요일 아침 시간 바이아컴 소유의 어린이 채널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블루스 클루`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CBS는 2살짜리부터 11살짜리 어린이 시청자를 새롭게 확보하게 됐다. 이 시간대 광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는 물건을 끝내 사주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카마진의 스포츠 집중 전략도 계속됐다. 그는 경쟁사인 USA네트워크로부터 월드레스링페더레이션(WWF) 방송 중계권을 빼앗아온다.
카마진은 디즈니 소유의 ABC 방송이 수퍼볼 하프타임에 화려한 쇼를 준비,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을 보고는, "CBS가 수퍼볼 중계를 할 때 MTV도 이런 쇼를 만들면 근사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카마진의 구상대로 CBS는 수퍼볼 중계권을 따냈고, MTV는 하프타임 쇼를 제작했다. MTV 제작진은 지난해 수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의도적으로 자넷 잭슨의 가슴을 노출시켜, 미국 시청자들을 경악케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확장한 카마진은 합병 첫해인 2000년 바이아컴의 매출을 56% 신장시킨다. 세전이익도 39%나 늘어났다.
카마진은 광고 전략에서도 공세를 취했다. 경기가 하강하면서 광고 단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송사들은 통상 전체 광고의 80% 정도를 입도선매 형식으로 광고 대행사에 싼 값으로 팔아버린다. 카마진은 "바이아컴은 경기후퇴를 모른다"며 관례를 깨고, 전체 광고의 55~60%만 대행사에 넘기는 승부수를 던진다. 만약 나머지 광고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CBS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카마진은 스스로 광고 세일즈를 자극할 동기가 필요했다. 동시에 광고주들에게도 CBS 광고는 덤핑이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야했다. 카마진은 `모 아니면 도` 식의 위험한 전략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카마진은 "사업은 한사람이 해야만 한다. 우리가 합병했을 때 그 한사람은 바로 나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레드스톤이 카마진의 이런 말을 즐겁게 생각할 리가 없다.
◇제국의 운명
카마진이 바이아컴의 간판으로 부상하면 할 수록 레드스톤은 그를 경계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레드스톤이 아니라 카마진을 찾았다.
"투자자들은 레드스톤이 아니라 멜을 선호했어요. 멜은 그들에게 사업과 관련된 팩트들을 던져줍니다. 이것이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을 초래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바이아컴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은 투자은행이 주선한 미디어 그룹 연례 회의에 레드스톤이 카마진을 대동하지 않고 참석하기도 했다. 레드스톤이 카마진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었다.
바이아컴 사정이 악화되면서 두사람 사이는 돌려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이아컴은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달한다. 경쟁사인 타임워너는 24%, 디즈니는 26%에 불과하다. 경기가 위축되고 광고 시장이 약해지면 매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월가는 바이아컴을 방송과 영화 컨텐츠의 이상적이 합병이라고 치켜세웠지만, 불황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회사 실적이 악화되면서 두 사람 간의 충돌이 더욱 자주 일어났다. `카리스마`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레드스톤은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카마진을 후계자로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 중 한명은 반드시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카마진 진영에서는 의도적으로 이사회에서의 논쟁을 언론에 흘렸다. 레드스톤이 젊은 카마진을 핍박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려했다.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이 심해질수록 바이아컴의 주가는 하강 곡선을 그렸다. 참다 못한 이사회는 두 사람이 모두 자중하고,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레드스톤은 카마진을 잘라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사진 18명 중 14명을 포섭해야하는데 8명은 이미 카마진 쪽 사람이 아닌가. 레드스톤도 카마진을 눈엣 가시처럼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레드스톤과 카마진 사이의 싸움은 지난해 카마진의 고용 계약이 새롭게 경신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듯했다. 그러나 바이아컴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뒤였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카마진과 레드스톤을 신뢰하지 않았다. 바이아컴은 경기 회복으로 미디어 관련주 주가가 모두 오름세를 나타내는데도 거북이 걸음을 계속했다.
특히 카마진이 책임지고 있는 CBS 라디오 부문 실적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광고 의존도가 높은 체질을 바꿀 장기적인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 미국 미디어 업계는 기술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PVRs(Personal Video Recorders)라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광고 시장이 크게 위축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PVRs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이 기술은 폐쇄회로TV에 쓰이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은행 객장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찍은 화면은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보통 비디오 녹화기로는 이를 처리할 수 없다. 이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서 대용량 저장 장치에 저장해야한다. 이때 쓰이는 기술이 PVRs다. 이것을 가정용으로 바꾼 상품이 이미 시판되기 시작했다.
PVRs를 이용하면 공중파 방송을 한 쪽에서는 녹화하면서 동시에 재생해 볼 수 있다.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가,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볼 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방송 중간중간에 나가게 되는 광고를 건너뛰게 된다. PVRs 기술이 일반화되면 5년래 바이아컴의 현금흐름이 9%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와있다. 광고 의존도가 높은 바이아컴으로서는 PVRs는 치명적인 발명품이다.
카마진은 이같은 미디어 업계 변화에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카마진은 투자자들 앞에서 "면목이 없다. 우리 회사 주가는 레드스톤 회장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적이 좋지 않다"고 실토해야했다.
그는 "바이아컴의 성공적인 운영실적이 주가로 연결되지 못해 실망한 투자자들이 많다"며 "미래의 성과를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 때 그의 이름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했던 기억이 생생한 카마진에게 바이아컴 주가 하락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레드스톤과의 기싸움으로 정력을 소비한 카마진은 투자자들로부터도 외면 당하자 회사내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결국 레드스톤 이후를 꿈꾸던 카마진은 스스로 바이아컴을 물러나게 된다.
레드스톤은 카마진이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면서 자신도 3년내에 CEO 자리에서 물러날 것임을 공언했다. 레드스톤은 카마진을 물리쳤다. 그에게는 후계자가 필요없었다. 미디어 업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 최정상의 자리까지 줄기차게 올라온 카마진 조차도 레드스톤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바이아컴은 다시 늙은 레드스톤의 손에 온전히 맡겨졌다. 첨단 미디어 제국, 바이아컴을 이끌기에 81세의 레드스톤은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닐까. 어쩌겠는가. 그것이 바이아컴의 운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