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헬기 조종하듯..KAI '밀리터리 메타버스'로 新시장 개척

[신년기획 - 미래 선점 나선 기업들]
①우주항공 - KAI 훈련체계통합실 르포
VR·메타버스 적용한 훈련체계 ‘新사업’으로 내세워
'메타버스 훈련체계' 해외 완제기 수출에도 힘 보태
지상 무기체계에 이어 게임·교육시장에도 진출 검토
  • 등록 2023-01-01 오후 6:00:00

    수정 2023-01-01 오후 7:49:03

고금리·고물가 등에 따른 경기침체의 파고를 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벗어나 우주항공, 배티러 등 미래 산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초격차 기술로 글로벌 우위 선점에 나선 기업들의 고군분투하는 현장을 찾아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우주항공 ②바이오 ③배터리 ④미래모빌리티(AAM)


[사천(경남)=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앞쪽엔 실제 수리온에 실린 계기판과 똑같은 모양의 계기판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팔을 내밀어 몸 앞에서 잡히는 조종간을 몸쪽으로 당기면 고도가 상승하고 바깥쪽으로 밀면 헬리콥터가 아래를 향하면서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조종간을 좌우로 움직이면 헬기가 해당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헬리콥터를 탄 것처럼 몸도 한쪽으로 기울여질 수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경남 사천시의 한국항공우주산업(047810)(KAI) 훈련체계통합실. 수리온(KUH-1) 가상현실(VR) 조종훈련 장비에 올라 VR 고글을 착용하니 위로는 넓은 하늘, 밑으론 논밭과 바다가 펼쳐졌다. 조종간을 통해 헬기를 움직이다 보니 실제 헬기를 조종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시각에 더해 물리적 움직임이 더해지다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같은 시간 훈련 장비 뒤쪽에 설치된 모션 체어는 조종석과 연동해 조종사 조종에 따라 함께 움직였다. KAI 관계자는 “기동 헬기 특성상 조종사는 물론, 승무원들도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며 “승무원들은 모션 체어에서 VR 고글을 착용하면 헬기 승객석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그 상황에서 각자 역할을 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현실(VR) 기기와 소형 6축 모션 플랫폼, 조종반력장치가 적용된 수리온(KUH-1) VR 조종훈련 장비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VR·메타버스 기술 적용 훈련체계 첫 선

KAI가 훈련체계 사업을 벌인 건 20년이 넘었지만 모니터가 중심인 시뮬레이터가 아닌 이처럼 VR·메타버스 기술을 적용한 훈련체계를 선보인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이는 지난 2012년부터 기술 기반 확장현실(XR) 기기 응용을 연구개발 과제로 수행해온 결과다. KAI는 이 같은 훈련체계를 이른바 ‘밀리터리 메타버스’라고 부르며 신(新)사업 중 하나로 꼽고 있다.

KAI는 현재 첫 한국형 기동 헬기인 ‘수리온’을 포함해 다목적 전투기 ‘FA-50’, 기본 훈련기 ‘KT-1’, 첫 국산 전투기 ‘KF-21’ 등의 조종·정비훈련과 관련된 메타버스 훈련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무인비행기(UAV) 정비, 소형 무장헬기(LAH) 조종 교육 훈련도 실제 항공기나 헬기 없이 VR 고글을 낀 채 가상에서 진행할 수 있다.

이날 찾은 KAI 훈련체계개발팀에서도 이와 관련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훈련체계개발팀은 수주 사업과 항공기 체계와 연계해 수주한 훈련 장비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개발·제작하고 이를 물리적·기능적으로 통합하는 일을 하는 부서다. KAI 관계자는 “훈련체계를 개발하는 인력만 120명이 넘고 그중 70% 이상이 소프트웨어 개발·제작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KAI는 밀리터리 메타버스 훈련체계의 양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기존 시뮬레이터 가격의 10분의 1 수준에서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밀리터리 메타버스는 실제 항공기나 헬기만큼의 공간이 필요한 기존 시뮬레이터와 달리 작은 공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즉, 기존 시뮬레이터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과 공간 경쟁력에서 더 나은 위치를 점하는 셈이다.

다만 밀리터리 메타버스 훈련체계가 널리 적용됐다고 하더라도 기존 시뮬레이터는 여전히 필요하다. 시뮬레이터엔 밀리터리 메타버스에서 만나볼 수 없는 기체와 똑같은 계기판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기체의 세부적인 움직임을 학습하는 데에선 시뮬레이터가 더 효과적인데, 앞으로도 시뮬레이터와 밀리터리 메타버스 훈련체계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관계자들이 가상현실(VR) 고글을 착용하고 KF-21 정비훈련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합성전장 훈련체계 시장 규모 수십조원 성장 전망

전 세계적으로 각종 전자장비와 무장을 탑재한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정교한 훈련체계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KAI가 개발한 시뮬레이터와 밀리터리 메타버스 훈련체계는 조종사와 정비사의 양성 기간을 단축하고 교육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실제 기체에서 훈련할 수 없는 기체 이상, 기후 악화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벌일 수도 있다.

특히 전투기 등 첨단 무기체계 운용 효과를 높이려면 조종사의 숙련도가 중요한데 VR·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하면서 훈련의 공간·시간적 한계를 넘어서게 된 점도 중요하다. 비행 조종훈련 시엔 훈련체계 간 연동을 통해 다수 인원이 하나의 가상현실에 접속해 편대비행·전술훈련을 펼칠 수 있고 정비 교육 시엔 여러 명이 하나의 가상 기체를 두고 훈련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를 포함한 합성전장(LVC·Live Virtual Constructive) 훈련체계 시장은 그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는 미래 성장산업으로 평가를 받는다. VR·메타버스 등 기술을 접목해 높은 몰입을 제공하는 동시에 훈련 효과가 높고 적은 비용으로 대규모 연합훈련까지 벌일 수 있어 미래형 훈련체계로 주목받고 있다.

KAI가 개발한 시뮬레이터와 밀리터리 메타버스 훈련체계는 완제기 수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KAI는 그동안 개발한 KT-1 기본 훈련기, T-50 고등 훈련기 등 기종마다 조종·정비 훈련 훈련체계를 개발, 완제기와 패키지로 수출해오고 있다. KAI 측은 “태국이나 폴란드에 완제기를 수출할 시 패키지로 묶이는 훈련체계의 덕도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FA-50 가상현실(VR) 시뮬레이터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전차 등 지상 무기체계 시뮬레이터 개발도 속도

KAI는 완제기 제작 능력과 20년이 넘는 기간 시뮬레이터 훈련체계를 개발해온 경험을 강점으로 꼽는다. 시뮬레이터든, 밀리터리 메타버스든 훈련체계를 개발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실제 기체와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는 기체 기술자료를 갖추지 않고는 쉽지 않다. 이는 결국 완제기를 제작하는 회사가 훈련체계 역시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KAI 관계자는 “록히드마틴·보잉·에어버스 등 해외 대형 완제기 제작 업체들도 모두 자사의 항공기 시뮬레이터 등을 개발하는 조직이 있고 이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KAI가 제작하는 항공기와 헬기의 훈련체계만큼은 KAI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KAI가 완제기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훈련체계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KAI가 20년 넘게 시뮬레이터 등 훈련체계를 개발하면서 쌓아 온 경험은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이다. 국산 잠수함 장보고-Ⅲ과 고속상륙정의 훈련체계에도 KAI의 시뮬레이터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KAI는 현재 여러 방산업체와 육상·해상 무기체계에 대한 훈련체계 개발과 관련한 협력도 검토하고 있다.

KAI는 그동안 개발해 온 훈련체계 기술을 토대로 무기 시뮬레이터 시장을 넘어 민간사업 영역에 진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게임을 포함해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학습 분야 등에서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국내 시뮬레이터 영상 시스템 시장이 오는 2027년엔 300억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KAI 관계자는 “밀리터리 메타버스를 포함한 메타버스 시장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단계로, KAI도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상태”라며 “그동안 쌓아 온 메타버스와 관련한 기술적 경험을 잘 살린다면 KAI로서도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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