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퇴보의 현상 중 하나가 혐오다"

'등단 20주년' 김선우 시인 인터뷰
"지난 시절 최선을 다해 작품을 써 왔다"
"사회가 지나친 이분법적으로 나눠져"
"여성들의 역량 문학에서는 굉장히 커져"
"시 읽는 독자 1만여명 우리 문화의 자랑"
  • 등록 2016-08-07 오후 4:11:32

    수정 2016-08-07 오후 4:11:32

김선우 시인(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96년 스물여섯 살 여름, 치열하게 시를 썼다. 그 중에 추리고 골랐다. 그해 겨울 계간 창작과비평에 응모한 10편의 시가 모두 실렸다. 대학 재학 시절 사회 변혁에 대한 꿈이 좌절된 이후 ‘살고 싶지 않았던 청춘’은 그렇게 등단했다. 김선우(46) 시인이 2000년 발간한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창비)은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시어로 문단에서 큰 화제가 됐다. 여성성을 단순히 젊은 여성이 지닌 육체적 매력으로 쉽게 재단하던 상황에서 여성성이 지닌 보다 큰 의미를 치열한 시적 언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후 김 시인은 다섯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네 편의 소설과 다수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천상병문학상, 현대문학상, 발견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중견 작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강원도 강릉시 강릉 녹색도시체험센터에서 주최한 ‘내 안의 보석을 찾아 떠나는 문학캠프’(이하 문학캠프)에서 만난 김 시인은 등단 20년을 되돌아보며 그간의 문학적 여정과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 독자들에 대한 애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20년 전 여름,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나?

“등단을 위해 습작시를 쓰던 습작생이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고 뒤늦게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스물세 살 무렵부터 습작시를 썼다. 2~3년 정도 꿈에서도 시를 쓸 정도로 열심히 썼다. 천 편이 넘는 습작을 했고 1996년 가을 열 편 정도를 추려 창작과비평에 응모했다. 열 편의 시가 전부 다 추천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을하자 정말 기뻤다. 시인이 되면서 사실은 시가 나를 구했다.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이전에는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전업 글쟁이가 되는 순간부터 ‘이렇게 써야 할 것이 많구나’깨달은 경우다.

사실은 별로 살고 싶지가 않았다. 제 청춘이 그랬다. 제가 사범대인 강원대 국어교육학과를 나왔다. 교사가 될 생각은 딱히 없었다. 격렬한 운동권으로 살았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가 변했다. 세계적인 정세도 변화가 컸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었다. 이런저런 현장들에서 궁리해보다가 ‘내 길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지?’ 자문하던 시기가 이십 대 중반에 왔다. 그런 중에 시를 쓰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시절 등단을 하지 않았다면?

“사회에 대한 적당한 냉소와 반항기로 세월을 탕진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등단을 했다. 이후 글쟁이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20년 동안 3~4년에 한 권씩 시집을 냈다. 장편 소설도 썼다. 시집을 쓰는 와중에 계속 소설과 에세이 계속 같이 써왔다. 시, 소설, 에세이 모두가 매력이 있다. 한국은 아직 장르 순혈주의가 세다. 외국 작가들은 보통 라이터(writer),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시인은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인 바탕이고 그 바탕 위에서 소설하고 산문집을 냈다. 지금까지 총 열 다섯 권 정도 책을 냈다. 시 해설서까지 더 하면 스무 권 정도 나왔다. 최선을 다해서 썼다.”

-창작은 고통스럽다고 한다. 작가로서 꾸준하게 책을 내는 비결은?

“책상 앞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글쓰기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을 정말 사랑한다. 제 음주가무 시절은 이십 대로 충분하다. 더 이상은 음주가무가 좋지가 않다. 제 모든 신체 사이클이 글쓰기에 맞춰 변했다. 2008년 첫 번째 장편을 냈을 때 소설 초고를 만든 다음 담배를 끊었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쓰고 살려면 ‘건강해야겠구나’는 자각이 들어서다. 두 번째 소설에서는 술이 끌리지 않는 단계가 왔다. ‘글쓰기에 최적인 상태로 내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구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만큼 쓰고 싶은 게 많다. 요즘은 시간이 너무 아까운 단계까지 왔다.”

-최근 여혐, 남혐 등 서로 혐오하는 사회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 특히 여성혐오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이 많다. 여성작가로 이런 문제에 대해 예민할 듯싶다.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20년 전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회가 지나친 이분법으로 나눠 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퇴보한다는 강력한 징후다. 한국 사회의 퇴보를 조장하는 핵심적인 인물들은 사실 정치인들이다. 20년 전에비해 정치인들이 더 미성숙한 거 같다. 미성숙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다 보니 관용의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총체적인 퇴보의 근원이다. 그 퇴보의 현상 중 하나가 혐오다.

다만 문학판 자체에서는 여성들의 역량이 굉장히 커졌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중에 여성들이 많아졌다. 문학판은 독보적인 여성들이 많다. 문제는 사회 전체로 환원되지 않고 문학판 속에서만 맴도는 것이다.“

김선우 시인(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첫 시집에서 여성의 신체를 매우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어찌 보면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에 있었다.

“현 상황을 보면 지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20년 전에 썼던 시 중에 ‘완경’ 같은 시는 제가 시를 쓰기 전에는 여성적 자각을 한 일부의 사람들이 ‘폐경’ 대신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언어였다. 그런 언어들이 아직 보편화 되지 않았다. ‘여류라는 말을 붙이지 말아라’고 수차례 지적하지만 공적인 언론에서 여전히 여류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힘이 빠진다. 하지만 정치,경제가 후퇴하는 상황에서 문학만 앞으로 나갈 수는 없다.”

-작가인 여성으로서 젊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진짜 나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회적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로 가능한 행복하게 살겠다. 행복은 누가 밖에서 주지않는다’는 확신을 해야 한다. 시스템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던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의지와 함께 ‘진짜 나로 살고 있나. 그냥 나로 살고 있나?’는 자문을 해야 한다. 첫 시집 나왔을 때 여성의 신체를 주체로 하는 시를 쓰면서 갖게 되는 해방감 같은 것이 있었다. 스스로를 해방 시키는 에너지.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캠프에는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왔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열망이 진짜라면 작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문학이 좋은 것은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틀림없이 살아남는다. 대중적인 성공이든 뭐든 국한되지 않고 그 작품을 인정해 주는 소수가 있던지 좋아해 주는 대중이 있던지. 살아남는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을 문학 판에서는 우습게 여긴다. 그것이 작가라는 집단이 가진 다른 점일 수 있다.

굉장히 많은 작가들 시인들이 다양한 자기 개성과 대면하면서 좋은 작품을 쓰고 있다. 소수건 다수건 간에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양하게 생성된 독자들이 있다. 무엇보다 문학 독자들은 정말 힘이 세다. 다른 예술을 향유 하는 관객들과 다르다. 문자 언어에 매혹된 사람들은 질기고 오래간다. 한국의 시 독자들은 세계적으로 1급이다. 유럽 시인들은 한국 시인들을 부러워한다. 시인들을 지지하고 시집을 구매하는 독자가 최소 1만 명 정도는 있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한국 사회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열의와 그 중에서도 다소 어려운 장르 즉 문자 언어를 활용하는 시에 대한 애정과 열정, 시 독자들이 가진 바로 그 열정과 애정은 자랑스럽다. 늘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런 독자들이 한국시와 문학의 버팀목이다. 그것이 한국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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