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아쉬움, 옷벗긴 미안함`..차(茶)로 소통

마지막 국무회의서 세 장관들 직접 차(茶) 따라주며 위로
정운천 장관에 각별한 아쉬움..김성이, 김도연 장관도 차마시며 대화
  • 등록 2008-07-08 오후 2:07:41

    수정 2008-07-08 오후 2:08:36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8일 오전 8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렸다. 전날 경질을 발표한 세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회의다. 한 번 사람을 쓰면 좀처럼 바꾸기를 싫어한다는 이 대통령. 쇠고기 파문 등으로 불거진 민심수습을 위해 이명박정부 초대 장관들을 떠나보내는 대통령의 심정이 안타깝고 무거웠음은 불문가지다.

경질되는 3명의 장관들과 이 대통령은 차를 마시며 이같은 심정을 내비쳤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가장 큰 시련을 안겨준 쇠고기 파동의 주역,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대통령은 회의 시작 10분전에 회의실로 들어와 장관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정운천 농림부 장관쪽으로 걸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시 후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눈에 들어온 듯 대통령은 김 장관에게 손짓하며 "차 한 잔 줄께 이리 오세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직접 당귀차를 찻잔에 따라줬다. 이 모습을 본 김도연 교육부 장관도 "저도 한 잔 주세요"라며 다가갔고 대통령은 김도연 장관에게도 차를 따라줬다.

대통령 주변은 순식간에 찻잔을 든 '떠나는 장관들'로 둘러싸였고 '남게된 장관들'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나눌 시간을 주려는 듯 대통령 주변을 조용히 비켜줬다는 후문이다.

채 몇분이 되지 않는 동안 벌어진 장면이지만 차(茶)를 따라준 순서가 대통령의 아쉬움과 정비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사태 초기에 정운천 장관의 경질 요구가 제기되자 '정 장관은 잘못한 게 별로 없다'면서 씁쓸해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결정되면 한우 농가들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정 장관에게 농민단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맡겼고 정 장관은 이 일을 꽤 훌륭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광우병 논란이 가열되던 지난달 초 "쇠고기 사태 초기에 농민단체들이 별 반발이 없었던 것도 정 장관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이라며 "오히려 식탁안전 문제로 민심이 흐를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게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각에서 유일하게 대통령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자수성가형 CEO출신이라는 정 장관의 독특한 이력도 대통령의 아쉬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한 직후인 지난 4월 26일 경기도 포천의 한우농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천 장관. 이때만 해도 한우농가의 불만을 잠재우고 경쟁력를 살리는 게 대통령과 정 장관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김성이 복지부 장관 역시 쇠고기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라기보다는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실언으로 여론의 눈총을 받다가 밀려난 케이스다. 뚜렷한 이유 없이 국면전환용으로 장관을 바꾸는 이벤트를 싫어한다는 이 대통령은 김성이 복지부 장관의 경질도 썩 내키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특별교부금 봉투를 모교에 전달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김도연 교육부 장관은 좀 다르다. 쇠고기 문제와 무관하게 경질된 유일한 장관이며 대통령이 처신문제를 지적하며 나무랐던 경우이기도 하다. 김도연 장관 파문이 있을 당시 이 대통령은 '모교를 지원하려면 사재로 해야 한다'면서 김 장관의 공개사과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물러난 세 장관 중에 정운천 장관의 경우 이번 사태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부처의 장관이어서 꼼짝 못하고 경질됐지만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아는 이들은 정 장관이 희생양이 됐다는 생각에 대부분 동의한다"면서 "아마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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