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여성들이 손을 배꼽 주변 단전에 모으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명상에 잠겨 있다.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하는 붉은빛 장미 모양의 벽지가 인상적인 요가 강습실은 고요한 명상 음악 속에 적막하기까지 하다. 가끔 어려운 동작이 나올 때면 들리는 “어이쿠!” 하는 낮은 탄성 소리가 전부다.
“몸이 바짝 마른 걸 보니, 아가씨도 요양하러 왔구먼?” 쉰이 채 안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대뜸 묻는다. “단식원에 요양을요? 다들 살 빼러 오신 거 아니에요?”라고 묻자, 피부 알레르기 치료를 위해 단식원에 왔다는 아주머니는 “살 빼러만 단식원 오냐”고 반문한다. 단식원 관계자는 “단식원 오는 분들의 60%는 살 빼려고, 40%는 건강을 위해 찾아와요. 그래서 다이어트·건강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해야 장사가 된다”고 말했다.
에스테틱실(피부관리실)과 한의원을 겸한 이 단식원에는 대학생이 몰리는 성수기가 아닌데도 15명이 입소해 있었다. 21세부터 5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80kg에 육박한 사람부터 45kg이 채 안 돼 보이는 사람까지 입소자들의 체형도 다양하다.
지난달 25일 오후 4시. 단식원 복도가 시끄럽다. “회원님, 오렌지 주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 과자도 이리 주세요.”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먹을게요. 저 낼모레 나가잖아요”라고 입소자가 애원하자 트레이너는 나간다. “몰래 먹을 것 반입할 때가 제일 난처하죠. 무조건 압수할 수도 없고….” 단식원 1층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단식원에 온 손님들이 꽤 많이 찾아요. 먹는 것 참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라며 웃는다.
밤 10시. 각 방의 불이 모두 꺼졌다. “잠들어 버리는 게 상책이에요. 아니면 배고파서 못 참아요.” 같은 방을 쓰는 김지혜(가명·24)씨는 말이 끝나자 돌아눕는다. 새벽 2시는 돼야 잠이 오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던 기자는 1시간 내내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 “잠 안 와요?” 김씨가 짜증 섞인 말투로 묻는다. “5일 이상 굶으면 옆집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예민해져요”라는 김씨는 오늘로 단식 7일째다.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단식 기간이 길어지면 신경이 예민해져 밤 10시 이후엔 TV를 켜지 않는 것이 단식원에서의 에티켓이다.
N단식원 김한식 부원장은 “질병이 있거나 무조건 굶으려고만 하는 사람이 갑자기 단식하면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26일 오전 8시30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가수 현영의 ‘누나의 꿈’ 노래와 함께 단식원의 하루가 시작됐다.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겠어요.” 기자와 같은 날 입소한 막내 김경희(가명·21)씨는 무용과 발레 전공자다. 세 달 전 만해도 경희씨의 체중은 34kg 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두 달 새 12kg이 불었다. “친구들 안 만나려고 단식원에 왔어요. 만나면 또 먹게 될까봐….”
오전 10시30분에 요가강습을 마치자 식사시간이 됐다. 죽과 미음 간장과 두부, 동치미가 메뉴이다. 단식 전 감식(減食)이나, 단식이 끝난 다음 보식(補食)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다. 그러나 이것이라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단식원 내에선 선망의 대상이다. 단식원에서 가장 활기있는 식사 시간에는 각자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꽃이 핀다. “언니, 대치동 00상가 떡볶이 먹어 봤어? 장난 아닌데…” “난 피자 먹고 싶어. 치즈크러스트로.” 김진영(가명·26)씨는 “먹는 얘기가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그거라도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다”고 했다.
김 부원장은 “다이어트든 건강 때문이든 입소자들은 단식원 문을 나설 때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후가 되자 방마다 탄성이 새어 나온다. 맛집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는 시각이다. “아, 나가자마자 실컷 먹을 거야….” TV를 보던 한 입소자가 중얼거렸다.
▲ 단식원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식사시간이 됐다. 죽, 간장, 두부, 동치미 등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에 입소자들이 둘러 앉았다. 단식원에서는 이 상차림을‘보식(補食)식단’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