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1년)국내 IT산업, 어두운 터널 "탈출중"

  • 등록 2002-09-11 오후 1:17:18

    수정 2002-09-11 오후 1:17:18

[edaily 김수헌기자] 지난해 "9·11" 뉴욕 테러사건 이후 끝이 안보이는 불황의 터널을 달려온 산업계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 물론 이같은 기록은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것이고, 여전히 상당수의 벤처, 중견기업들은 경기침체의 늪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9·11 이후 힘들었던 1년을 견뎌냈던 기업들은 경기가 이미 바닥을 지나 완만한 회복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하반기 실적호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로 본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지난 3~6월보다 상승폭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치는 100을 웃돌고 있다. 올들어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8월에 IT제품 수출이 늘면서 수출증가율이 두자리수 회복을 보인 것은 업계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IT업계, 9·11테러로 패닉에 빠지기도 지난해 중반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세계경기침체 상황에서 터진 9·11 테러는 국내 산업계, 특히 IT업계에는 치명타를 날리는 것이었다. "벤처캐피탈로부터 자금지원은 끊어지고, 미국 거래선은 확정됐던 계약마저 미루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거래선에 제품을 들이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 9·11 테러 당시 IT벤처기업의 해외영업을 담당했던 한 영업맨은 1년전 상황을 "악몽"으로까지 표현했다. 북미지역에 UMS(통합메시징서비스) 솔루션과 산업용 PDA(휴대단말기)를 수출하던 블루버드소프트의 해외영업담당 간부였던 이모씨는 당시 실리콘밸리 지역에 상주하고 있었다. 그는 "나인 일레븐(9·11)은 IT 경기침체에 완전히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거래선을 찾아다녔지만, 모든걸 동결했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제품 구매는 미뤄졌고,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IT투자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실리콘밸리와 IT업계 전체가 한마디로 정신적, 심리적 공황에 빠져들었던 거죠" 그나마 보안솔루션과 데이터백업 스토리지업체들만 약간의 테러특수를 누렸을 뿐 국내 IT업체들 대부분이 미국 IT투자축소의 직격탄을 받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IT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수출의존도가 큰 국내 경제구조상 산업 전반이 크든작든 테러 이후 가속화 된 미국 경기불황의 영향권 내에 있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다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18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할 때 182억은 사실상 적자나 다름없었다. 분기에 7조원 이상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에서 회계 조정만으로 충분히 낼 수 있는 이익 규모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반도체사업에서 3,4분기 연속으로 사상 처음 영업적자를 냈다. IT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과 원가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도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따라 반도체 D램(128메가 기준)값은 11월 들어 1달러 이하로 떨어져 "반도체 쇼크"를 불러오기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박사는 "96년에는 3%대 세계 경제성장율과 엔화 강세 기조 등으로 대외환경이 양호해 반도체 쇼크가 완충됐지만, 지난해에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등 세계경제 동반침체와 테러로 인한 불안이 가중되면서 대외환경도 악화일로에 있었다"고 진단했다. 9·11 이후 10월, 11월 수출은 전년 동월대비 17~20%나 줄어드는 등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환율 1100원에서도 이익내자..위기관리경영 확산 이같은 불황속에서 기업들이 선택한 것은 긴축경영과 내실경영이었다.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경영이 더욱 자리를 굳혔고, 원가경쟁력과 기술경쟁력을 키우는 길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새삼 확산됐다. 두산, 금호, 코오롱 등은 많은 중견그룹들이 비수익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핵심역량강화에 집중하는 등 사업구조 재편에도 매진했다. LG전자와 LG화학은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서 사업역량을 한층 강화했고, (주)한화 등은 기업분할을 통해 투명경영과 사업 전문화를 시도했다. 삼성,현대차 등은 원달러 환율기준을 1150원으로 책정하는 등 초보수적 경영계획을 세웠다. 1150원대에서도 조단위 이익을 내는 경영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었다. 삼성의 일부 계열사들은 내부적으로 1100원까지 환율기준을 낮추기도 했다. 한마디로 기업들이 위기관리경영을 기업들이 체험하고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내실과 위기관리경영은 테러사태가 진정되면서 실적호전으로 연결됐다. ◇기업 체질강화됐나..평가는 "이제부터" 지금 업계는 다시 환율하락과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여전히 불투명한 미국경기 등으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벤처기업들은 아직 불황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들 기업들의 자금조달수단인 주식시장은 갖가지 악재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9·11 이후 1년을 버텨온 기업들이 얼마나 체질을 개선하고 위기관리경영 시스템을 내재화시켰는지는 지금부터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 한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견고하게만 보였던 그룹들도 허물어져가는 급박한 상황속에서 기업들은 앞뒤가릴 틈없이 생존을 위한 매각과 몸집줄이기에 급급했었다"면서 "지난해 경기악화와 사상 초유의 9·11 등을 겪은 기업들이 그동안 얼마나 체질을 강화해왔는지, 위기관리 경영시스템을 확고하게 정착시켰는지는 지금부터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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