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에서 국내최고 유머코치가 된 부부

삶의 밑바닥에서 부부를 살려낸 것은 유머와 웃음
유머발전소 최규상 소장, 황희진 부소장 부부
  • 등록 2013-09-12 오전 11:25:42

    수정 2013-09-12 오전 11:25:42

[이데일리 류성 산업 선임기자] “유머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아니고 촌철활인(活人)이다. 유머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수술을 하지 않고 병을 낫게 해주는 데 최고의 특효약이다.”

최규상 유머발전소 소장과 황희진 부소장 부부를 12일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머코치 부부다. 유머코치 경력 10년의 ‘전국구’ 유머 고수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두물머리 부근에 이 부부의 사무실이자 살림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 소장 부부를 유머라는 세계에 초대한 것은 뜻밖에도 ‘신용 불량자’ 딱지였다. 10여 년 전 후배 보증을 잘못 선 게 화근이었다. 최 소장은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온몸에 바늘이 돌아다니며 콕콕 찌르는 듯한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이래서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생 자체가 만신창이가 됐다. 그래도 “신용불량은 되더라도 양심불량은 되지 말자”는 다짐 하나로 최 소장 부부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때 최 소장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게 ‘웃음’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웃는 순간엔 참기 힘든 고통이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살기 위해 웃어야 했다. 매일 밤마다 서울 잠실 석촌호수를 찾아 30분 넘게 미친 사람처럼 박장대소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서 웃어야 살 수 있다는 일념에 사로잡히다 보니 호수 근처에 몰려 있던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부끄러움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 업소 주인들은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대놓고 최 소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그의 박장대소 기행이 반복되자 나중엔 호기심에 그에게 하나 둘 씩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당신은 뭐가 좋은 일이 있어 매일 밤 그렇게 혼자서만 웃고 다니느냐. 좋은 일 있으면 같이 웃자.”

대한민국 최초의 노천광장 웃음 클럽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매일 밤마다 1시간씩 7년 넘게 산책 나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석촌호수 노천광장에서 유머를 풀어냈다. 얼마 전 노천광장 주변이 재정비되면서 서울 송파구 보건소로 자리를 옮겨 웃음 클럽을 계속 열고 있다. 장소 문제 등으로 웃음 클럽 개최 횟수를 월 1회로 줄였지만 지난달까지 웃음클럽을 무려 915회나 열었다.

국내 최초이자 최장수 웃음클럽인 셈이다. 최 소장은 조만간 기네스북에 이 기록을 등재할 예정이다. 그가 국내 최고의 유머코치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바로 10년간 웃음클럽을 운영하면서 쌓은 실전 경험 덕분이다. 웃음클럽이 혀짧고 내성적이기만 했던 그를 유머 달인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유머코치 최규상 유머발전소 소장과 황희진 유머발전소 부소장 부부를 경기도 양평 양수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부부는 10년전 신용불량자에서 웃음과 유머로 삶의 고통을 극복하며 국내 대표 유머고수가 되었다. 최 소장은 “먼 훗날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맞이해서도 의연하게 웃으면서 세상을 뜰 수 있는 진정한 유머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정욱 기자
“사람은 삶의 처절한 고통을 맛본 뒤라야 진정한 유머의 맛을 안다.” 최 소장은 “유머를 통해 고통의 웅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며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삶의 희망은 있고, 결국 기사회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유머에 대한 최 소장의 철학도 독특했다. 그는 “세상을 유머로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인생과 세상을 갖고 노는 사람이 된다”고 자신했다. 예컨대 자신의 키가 작다고 생각하면 작은 키가 그 사람을 갖고 놀게 된다는 논리다. 작은 키가 그 사람에겐 열등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키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키가 작으면 친구들과 함께 걷다가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남들보다 더 빨리 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이처럼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버리는 게 유머의 힘”이라며 “유머는 사람을 살리는 가장 완벽한 도구”라고 말했다.

그는 유머엔 5단계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1단계 단순하게 웃기는 유머에서부터 사람(나)을 살리는 유머(2단계), 매출을 살리는 유머(3단계), 조직과 기업을 살리는 유머(4단계), 마지막으로 나라를 살리는 유머(5단계) 순이다. 최 소장은 지금까지는 2단계에 집중해 왔지만 앞으로는 3단계부터 차근차근 업그레이드해 나갈 계획이다. 요즘 한참 열중하고 있는 것은 매장이나 영업점에서 고객을 유머로 즐겁게 하면 매출이 오르는 유머 비법 개발이다. 나중엔 청와대와 국회에서도 정기적으로 웃음클럽을 열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사회지도층을 유머로 중독시켜 온 나라에 유머를 효과적으로 퍼뜨리기 위해서다.

황 부소장은 생활 속에서 직접 겪은 비즈니스 유머를 소개했다. 1년 전 노트북 컴퓨터를 사러 한 쇼핑몰에 갔단다. “이 컴퓨터는 뭐가 좋나요. 한시간을 둘러보다 한 매장에 도착한 황 부소장이 판매원에게 물었다. ”이 컴퓨터를 사면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판매원은 이어 ”먼저 서비스 보증기간을 두 배로 늘려 드립니다. 둘째, 가격을 15% 할인해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번 째는 구매하신다면 이번 달 제 봉급이 올라갑니다.“

한바탕 웃음으로 마음이 즐거워진 황 부소장의 지갑이 열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황 부소장은 ”사람들은 돈을 쓸 때는 죄뇌로 꼼꼼하게 판단하지만 선택할 때는 기분좋은 우뇌가 최종 결정을 한다“고 비즈니스 유머의 위력을 설명했다.

일찍이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했던 독일인 알폰스 데켄 교수는 웃음에 4가지 종류가 있다고 정리했다. 첫째가 건강하게 해주는 웃음,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세번 째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웃음, 넷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웃음이다. 최 소장은 이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웃음에 가장 공감한다고 했다. “행복할 때는 누구나 웃지만 힘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고수”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웃게 되면 기분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비해 생활 수준은 높아졌지만 우리 곁에서 갈수록 웃음과 유머가 줄어든 현실에 대해서도 유머 전문가로서 간단명료한 진단을 내놓았다. “사람은 두 가지 동기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즐거움”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가 사는 신자본주의 시스템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한다”고 분석했다. 두려움이 삶을 이끄는 체제에서 갈수록 웃음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는 얘기다.

최 소장은 “사람은 삶의 처절한 고통을 맛본 후라야 진정한 유머의 맛을 안다”며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삶의 희망은 있고, 결국 기사회생하게 된다”고 회고했다. 김정욱 기자
최 소장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자만이 삶에 진정한 웃음이 가득해질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웃음과 유머가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즐거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하는 사람을 돕는 자”가 바로 유머코치라고 정의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유머코치가 이 세상 최고의 유머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 소장은 미국 1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한 유머가 가장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존슨은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상대 후보는 이런 존슨의 학력을 폄하하며 “한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할 수 있겠느냐”고 조롱했다. 뒤이어 연단에 조용히 오른 존슨은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라며 간단하게 맞받아쳤다. 좌중엔 웃음이 터졌고 결국 존슨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인생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이런 유머를 ‘지존 유머’라고 평했다.

최 소장이 1000회 가까운 웃음클럽을 열면서 경험한 가장 감명 깊었던 얘기 한가지. 어느 날 병색이 짙은 할머니가 웃음클럽에 찾아와 미친 듯이 웃더란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응, 아주 건강해. 호호호… 말기 위암 빼고 다 좋아! 호호호…”라고 답하더란다. 알고보니 할머니는 3개월 시한부 판정받은 말기위암 환자였다. 얼마 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웃었다.” 나중에 그 할머니의 아들이 전해준 말이다.

“어느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의연하게 껄껄 웃으며 세상을 뜰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고수이자 유머 고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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