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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미혼 직장인 K(31·여)씨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매해 여름휴가를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올해도 고민을 하다가 친구와 함께 유럽의 몇 개국을 돌기로 했고, 이미 비행기 티켓 예약도 마쳤다. K씨는 언제나 그랬듯 곧 다가올 휴가를 떠올리며 업무에 힘을 내고 있다. 그런데 K씨는 무조건 해외여행만 고집한다는 철학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걱정거리를 한국에 다 남겨두고 새로운 세계로 훌쩍 떠나는 느낌이 있어 좋은 것 같다”면서 “국내 여행보다 아무래도 비용 부담은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말했다.
특히 동남아 휴양지 등 멀지 않은 나라들의 경우 웬만한 국내 여행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만족도는 더 높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해외여행 수요만 ‘고공행진’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도 해외여행 수요만큼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5월 증가율은 4월(16.6%)보다 다소 하락하기는 했다. 비성수기 영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째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건 비행기표 수요의 증가가 추세적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해 11월 당시 증가율은 23.0%였고, 이후 매월 20.6%→32.2%→41.1%→24.2%→16.6%→15.2%를 기록하고 있다. 7개월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은 한은이 2010년 12월 관련 통계를 편제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본격적인 휴가철 성수기의 비행깃값을 지불하기 위한 신용카드 사용액은 더 큰 폭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29일 출발 승객은 10만469명에 달했다. 이날 하루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출발 여행객은 10만9439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 최고치인 지난해 7월31일(10만4467명)을 뛰어넘는 수치다.
주목할 만한 건 국내 소비 전반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해외여행만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5월 국산신차와 중고자동차를 사기 위한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 2.5% 감소했다. 전자·통신제품의 경우 5월에는 21.6%를 기록했지만, 직전 6개월 중 5개월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그만큼 수요가 들쭉날쭉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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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 때도 月 2.5조씩 나가
해외여행 ‘쏠림현상’은 한은의 국제수지 통계에서도 발견된다. 올해 5월 일반여행지급은 20억9710만달러로 나타났다. 전날 원·달러 환율 종가(1122.1원)로 환산하면 약 2조3532억원이다. 일반여행지급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여행 등으로 쓴 돈을 말한다.
일반여행지급은 6개월째 월 20억달러를 넘고 있다. 비수기 때도 월 2조5000억원 안팎이 해외여행으로 쓰인다는 얘기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6월 이후 여름철 성수기 수치는 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오는 3일 내놓는 6월 국제수지 잠정치에서도 여행수지의 적자 폭이 주목된다. 5월 여행수지(13억6000만달러 적자) 적자 폭은 역대 최대였다.
일각에서는 최근 모처럼 살아나는 소비심리가 정작 해외로 쏠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급증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긴 하지만, 이런 탓에 국내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 전반의 선순환 구조는 작동하기 어렵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주요 부문이 여행 오락 문화 등인데, 우리나라는 관련 인프라 경쟁력이 부족하다”면서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도 국내 여가 서비스의 경쟁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