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칼럼니스트]
어제(6월 26일)는 또 다시 미국에서 테러라도 터진 줄 알았습니다. ‘월드컵’의 열기에서 채 헤어나오지 못한 시점에 ‘월드컴’이라는 미국의 장거리전화 회사가 사고를 단단히 쳤다는 뉴스가 나왔고, 그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으며 우리 한국시장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화끈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장세가 연일 이어지고 있어 뚜렷이 밝힐 뷰도 없지만 도저히 한 마디 하지 않고는 못 넘어 가겠군요.
◇유독 성격 급한 한국인, 그리고 한국의 금융시장
월드컴이라는 미국의 통신회사가 작년부터 5개 분기에 걸쳐 일반지출을 자본투자로 처리하는 회계조작을 통해 30억 달러 넘게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회사의 주가는 하루 만에 70%나 폭락하고 뉴욕 증시를 비롯한 전세계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보였다.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채권쪽으로는 매수세가 몰리고 미 달러화는 끝없어 보이는 추락세를 이어갔는데……
종합주가지수의 54포인트(7.15%) 폭락, 코스닥의 경우 낙폭은 더 커 8.48%에 달하는 하락률, 지표금리(3년물 국고채 2-4호 기준)의 0.23% 포인트 급락(국채가격 폭등), 환율의 10원 급락 등 이른바
주가, 금리, 환율의 트리플 폭락세로 서울의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는데 시장의 출렁거리는 폭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참고로 당일 세계 각지의 주가지수 하락율을 살펴보면 일본 4.02%, 대만 3.63%, 홍콩 2.39%, 태국 4.35%, 필리핀 2.79%로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시장의 낙폭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고 유럽을 살펴봐도 영국 2.16%, 프랑스 1.73%, 독일 2.47%에 불과해 왜 우리나라 주가지수 선물이나 옵션시장이 세계최고의 시장으로 발돋움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끔 한다).
나스닥 100 지수선물이 50 포인트 가까운 폭락세를 보이고 미 국채선물도 1 Big이 넘는 폭등세를 보이는 와중에 기관들의 주식 손절매와 채권 매수세가 패닉상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시장을 휘몰아쳤는데, 막상 수요일 뉴욕 증시는 개장 초의 폭락세를 극복하고 다우존스 지수는 6포인트 남짓 하락한 보합세로, 그리고 나스닥은 5.34포인트나 반등하면서 장을 마감하였다. 목요일 아침 서울의 주식시장은 10 포인트 내외의 상승장세를 보이며 금방 어제의 “투매”를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채권시장에서의 매수열기 또한 크게 꺾였다.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는 한국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유독 미국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점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나? 그 만큼 한국경제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이 커서 금융 지표들이 앞으로의 경제상황을 선반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작년 9월 이후의 증시 급등세에 다소 이해하기 힘든 거품이 끼었다가 그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라 이토록 고통스러운 장세가 펼쳐지는가? 금융시장은 통상적으로 오버슈팅(overshooting)이라 불리우는 과열상태를 거치면서 수익을 낼 기회를 창출하는 곳이니 만큼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시장 흐르는 대로 쫓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가운데에 문득 월드컵 결승전으로 생각이 치닫는다. 16강 진출을 다투는 1라운드에서부터 이변이 속출하고 1승을 그토록 갈급해 하던 한국 대표팀이 4강에까지 진출하는 기적 같은 일도 벌어졌지만, 결승에 이른 두 팀은 독일과 브라질로 판가름 났다. 대진운, 심판 판정의 정확성 여부, 객관적 전력만으로 예상할 수 없는 스포츠 경기의 의외성 등등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의 리그전과 토너먼트전을 거치고 나서 가려진 정상을 노리는 두 팀은 “펀더멘털”이 뒷받침되고 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팀들만 남은 것이다. 금융시장도 장기적으로는 이와 같이 되지 않을까?
◇120엔과 1200원에 다가선 환율
이젠 왜 달러가 이렇게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은 없다.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미국의 통화가 상승세를 이어간 것은 달러화 표시자산에 대한 세계자본의 투자로 설명되어 왔고, 그러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선 데에다 연초 예상한 미국경기의 회복세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음으로 인해 증시가 폭락세를 이어 감으로써 달러는 유로화를 비롯한 세계 주요통화들에 대해 급격한 절하추세에 진입했다는 점에 다들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추락하는 달러의 바닥이 어디가 될 것인가 하는 점으로 압축되고 있는데…
6월26일(수요일)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가 장 중 0.9945까지 치달아 최근 급격히 부상한 “1유로=1달러”가능성을 높였고 달러/엔 환율은 일본 재무성의 지속적인 시장개입을 비웃기라도 하듯 119엔의 하향돌파까지 시도하다가 120엔 근처에서 마감되었다. 시장에서 나도는 “달러/엔 환율은 118엔, 달러/원 환율은 1180원 까지는 한 번 출렁거렸다가 다시 120엔과 1200원을 중심으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장세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연말 달러/원 환율은 1150원 쪽을 향해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가지 않겠는가?”하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두 가지 가능성에 다 노출되어 있다.
“시장에서 간다고 하면 결국 가더라.”하는 데에 따른 환율의 추가하락 가능성과
“모두가 간다고 얘기하는 레벨은 잘 못 가더라.”는 데에 따른 환율의 반등 내지는 횡보 가능성…
어느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뉴욕 증시에 달렸다. “나쁘지 않은 경제지표”와 “기업부문에서 터져 나오는 악재들” 사이에서 붕괴와 회복의 갈림길에 선 뉴욕 증시가 향후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에 계속 주목해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한 장세의 진원지인 미국의 행정부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현재의 위기상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다.
일본 재무성은 요즈음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달러화의 급락세를 저지하기 위한 시장개입에 나서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루 1조 달러가 거래된다는 국제외환시장에서 한 차례에 15억~30억불 정도로 알려진 시장개입 규모로는 도도한 달러 하락세의 시장흐름을 돌려 놓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G7 국가들의 협조도 없는 가운데에 독자적인 시장개입을 단행해 오고 있으며,
구로다 일본 재무성 차관은 최근 일본의 달러매수/엔화매도 개입이 단순히 일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가 있다. 시장에서 조롱 당하고 있는 일본의 시장개입을 바라보면 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에 일부 공감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공멸(共滅)을 피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현명한 시장이 자율적으로 살 길을 모색해 나갈 것임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오버슈팅과 부화뇌동으로 판을 망치기도 하는 시장이기에 더 큰 후회를 하기 전에 적절한 대책이 나와줄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골병이 든 상태라면 백약이 무효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