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독립자금 젖줄 '활명수 우물' 사라지나?

동화약품, 중구 순화동 신사옥 설립 허가
1897년부터 활명수 만들던 우물 남아 있어
지하에 있어 철거 불가피
"어떤 식으로 남길지 내부 논의 할 것"
  • 등록 2019-07-25 오전 8:44:00

    수정 2019-07-25 오후 3:59:28

서울 중구 순화동 동화약품 사옥 앞에 세워진 연통부 터 표지석.(사진=서울시 중구 제공)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한일관계가 악화로 치달으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동화약품(000020)의 새사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화약품은 지난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중구 순화동 기존 사옥터에 대한 재개발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1966년 지은 기존 사옥은 15층짜리 오피스 건물로 거듭나게 된다.

동화약품 사옥터는 동화약품이 1897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킨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기존 건물을 헐고 1966년 새로 지은 것인데, 이 건물 역시 50년이 넘어 새로 짓기로 한 것이다.

이 자리는 단순히 동화약품이라는 제약사가 1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바로 일본 강점기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지하조직인 ‘연통부’가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最古)’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활명수는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현재 대통령 경호원)이던 민병호가 동화약방을 세우고 궁중에서 쓰던 비법 그대로 만든 약이다. 당시만 해도 토사곽란(심한 설사와 구토)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민 선전관은 왕실에서 쓰던 방법과 재료를 그대로 이용해 만든 약에 사람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으로 ‘활명수’(活命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활명수는 사람뿐 아니라 나라를 살리는 일도 했다. 활명수 수익은 상하이로 보내져 임시정부의 활동자금으로 쓰였다. 동화약품 사옥 지하 보일러실 한 켠에는 당시 활명수를 만들 때 쓰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물 크기는 지름 90㎝, 깊이 4.5m다. 동화약품은 1940년까지 이 우물물로 활명수를 만들었다. 이후 1950년대 급격한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우물물이 마르게 됐고 이 우물은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동화약품이 이 터에 새 사옥을 지으면 이 우물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물 위치가 건물 지하이기 때문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건물과 따로 떨어진 부지에 우물이 있으면 보존하기가 쉽지만 건물 지하에 있어 이를 부수지 않고서는 새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우물 보존 여부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현재 모습 그대로 남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표지석을 세울지 그대로 옮길지 등 어떤 식으로 역사를 보존할 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화약품은 사옥 터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신사옥 2층에 정동근대역사정보관을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서울 중구 순화동 동화약품 사옥 지하의 우물터. 1897년 설립 이후 1940년까지 이 우물물로 활명수를 만들었다.(사진=동화약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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