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언급하는 불법행위란 비싼 사은품을 내걸고 길거리에서 카드회원을 모집하는 일이다. 연회비의 10%를 넘는 경품을 제공해서는 안되고 카드 모집도 길거리에서 해서는 안된다는 게 법에 명시되어 있으니 불법이 맞고 불법은 근절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법을 지키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용카드 회원모집과 관련한 법을 과연 그대로 두는 게 맞는지, 경품 제공도 금지하고 길거리 모집도 막는 게 맞는 지는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카드사태의 충격에 놀란 나머지 너무 급하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도입된 규제라는 생각 때문이다.
길거리 모집을 못하게 막는 법을 도입한 것은 카드사태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였다. 직업이 없는 대학생이나 주부들에게도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하다가 문제가 생겼던 카드사태의 주범이 길거리 모집이라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길거리 모집은 카드 사태의 한 단면이었을 뿐 근본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카드사태의 주범은 소득도 따져보지 않고 카드를 발급한 카드사의 발급정책이었고, 길거리 모집은 거기에 동원된 수단에 불과했다. 마치 떼강도가 날뛴다고 떼강도들이 자주 타고 다니는 트럭을 팔지 못하게 막은 것과 비슷하다.
카드사태라는 원죄가 있는 카드사들은 당국의 이런 정책에 대해 아무 말을 못하고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한 정책이다.
휴대폰이나 초고속인터넷은 신용카드 처럼 한사람이 너 댓 개씩 가입하지 않고, 펀드도 돈 있는 사람이 자기 돈으로 가입하는 거라 별 부작용이 없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도의 안전장치는 이미 신용카드에도 있다.
이미 카드사들은 자체적으로, 또는 금감원의 지도에 따라 소득이 없거나 적은 계층에게는 카드를 발급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카드 회원 신청서를 쓰게 한다고 해서 신용카드가 발급되는 구조가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다.
가두 모집인들도 아무나 카드 신청을 받지 않는다. 그래 봐야 카드가 발급되지 않고 그러면 판매수당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그 절차에 구멍이 있다면 금감원은 길거리 판매를 단속할 게 아니라 그 구멍부터 서둘러 막아야 한다.
그걸 감독당국이 물리적으로 막다보니 카드사들은 모집인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마케팅 비용을 TV나 신문광고로 돌리게 된다. 카드 소비자들이 직접 받을 수 있는 사은품 혜택을 결국 중간에서 언론사들이 웃으며 받아가는 엉뚱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금융당국이 신용카드의 길거리 모집을 막는 바람에 숨어서 웃는 곳은 또 있다. 바로 은행계 카드사들이다. 신용카드가 필요없는 사람들에게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신용카드 전단이나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내미는 신용카드 가입신청서나 모두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은행은 고정식 점포니까 괜찮고 전업계 카드사들은 이동식 점포(가두판매)라서 안된다는 단순한 잣대는 그래서 불합리하다.
은행 대출창구에서 `이거 하나 써주시죠` 하며 슬그머니 내미는 카드 가입 신청서가 "카드 가입하시면 놀이공원 입장권 드릴께요" 하고 소리치는 카드 모집인들의 목소리보다 더 윤리적이고 소비자를 덜 불편하게 하며 신용카드사들의 건전성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마케팅 경쟁은 자유롭게 풀어서 소비자들이 정보와 혜택을 얻을 수 있게 하고 그 대신 카드 발급심사를 철저하게 해서 건전성 위험을 줄이는 게 일류 금융감독이다. 귀찮고 말 많으니 뭐든지 다 틀어막고 보자는 것은 삼류 감독방식이다.
`이미 만들어진 법을 어쩌란 말이냐`는 체념, `애초부터 길거리 모집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는데 언론에서 그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느냐`는 불만, `길거리 모집을 막는다고 당장 문제가 될 건 없지 않느냐`는 안일함, `사실 카드사들도 과열경쟁하는 것 별로 안좋아한다`는 동업자 의식 같은 것들이 감독당국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