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ETF의 유통시장은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으나, ETF의 발행시장은 상대적으로 토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미국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발행시장을 먼저 살펴 보자. ETF에 대한 초기 수요, 즉 설정의 주체는 곧 인덱스 펀드에 대한 ‘장기 투자 수요(적어도 6개월 이상)’라고 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의 인덱스 장기 보유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이는데, 그들의 상당 부분은 1주 전후의 회전 특성을 가지는 포지션 트레이더와 그 보다 빠른 회전율을 가지는 데이 트레이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ETF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이 될 것이다. 게다가 설령 그 들 중 장기 투자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순수한 지수 수익률 보다는 플러스 알파(저평가)나 하이 베타(지수에 대한 높은 상승 반응)를 노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지수 수익률 그 자체는 ‘양’에 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발행시장에서는 개인 투자자 보다 주로 기관들의 참여가 클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반응 역시 시원치 않을 전망이다. 한가지는 그들의 펀드 운용 목표가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며, 나머지 한가지는 그들의 절대적인 시장 참여 비중 자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펀드의 대부분은 전문 펀드평가회사에 의해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평가되므로 펀드 매니저들은 일종의 보험 효과를 위해 펀드의 일부분을 해당 인덱스 펀드로 채워 넣는다. 즉, 펀드의 상당 부분은 벤치마크를 추적하게끔 자동화 시켜 놓고 나머지 부분에서 보다 나은 종목의 선택을 통해 승부를 건다. 반면, 국내 펀드의 운용과 내부 평가는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목표 수익률의 도달 여부에 의존한다. 펀드 평가 시스템의 발달로 인하여 목표 수익률도 ‘지수 수익률 + 알파’의 형태가 점차 확산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펀드가 지수 수익률과 무관한, 다소 황당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필연적으로 펀드 내 인덱스 부분의 비중을 낮추게 되므로 ETF에 대한 설정 수요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펀드 매니저의 문제 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 시절의 기대수익률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투자자들의 과욕(?)’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한편, 미국의 증시는 간접 투자상품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으며, ETF 발행시장은 대부분 인터내셔널/글로벌 펀드와 같은 대형 펀드에 의해서 발전했다. 1993년 초기, 국내 지수형 ETF(domestic index ETF)만 존재했을 당시에는 ETF시장의 성장 속도가 느렸으며, 국제 지수형 ETF가 상장되면서부터 현저하게 성장이 가속되었던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발행시장의 주요 참여자들이 국제 분산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대형 펀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과는 다르게 국내 증시의 경우에는 간접 투자의 비중이 매우 낮다. 거래대금 기준으로 외국인을 포함한 기관의 비중이 24.8%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설령 펀드의 운용 방침이나 목표, 평가 기준 등이 미국식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ETF의 설정을 위한 자금과 수요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국내에 기진입한 외국계 펀드 중에서 반도체와 같은 특정 섹터별 투자가 목적이 아니라 국가별 투자가 목적인 펀드는 기존의 인덱스 보유분을 ETF로 교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발행시장 성장에 다소나마 기여할 가능성이 있겠다.
발행시장과는 다르게 유통시장은 개인 투기세력에 의해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투기 수단으로서 ETF가 가지는 장점과 극도로 발달된 개인들의 투기성향(?)이 맞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ETF 투기를 위해서는 지수선물에 비해서 적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 매도할 때 세금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일반 주식 미수(증거금 40%)에 비해 더 강력한 레버리지(증거금 20%)를 걸 수 있다는 점 등 다방면으로 투기 매매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다.
한편, 이미 여타 국가들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국내 지수선물/옵션시장의 급성장이나, 그 배경에 50%의 참여비중을 자랑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있다는 점 등은 우리의 투기 성향이 얼마나 높은지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당일 매매 비중(데이 트레이딩)이 50%를 상회하고 있는 주식시장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미국 ETF시장에서도 개인이나 일부 기관들(floor traders)의 데이 트레이딩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증시의 투기 속성이나 온라인 거래의 발달 정도, 세제상의 차이점 등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데이 트레이더 중 선견을 가진 이들과 차익거래자의 이동을 통하여 유통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것이며, 일반 투자자들이 그 뒤를 이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유통시장은 별 걱정이 없어 보인다.
둘째, 국내 ETF시장은 유통시장에 의해서 발생시장의 성장이 견인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일 것이며, 초기에 빠른 속도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는 다소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 상장 이후 지수 상승 여부와 위험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 확산, 섹터별 ETF의 도입 등 기타 증시 여건의 개선에 따라 다른 미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므로 어느 한쪽이 침체될 경우, 나머지 한쪽도 성장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발행시장의 성장이 선행되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 유통시장이 개설되어 활성화되는 것이 상례이다. 발달된 유통시장은 발행시장으로의 진입 조건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양자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국내 증시에서는 유통시장에 비해 발행시장의 여건이 좋지 않다. 따라서, 성장 순서는 반대가 될 것이며, 유통시장의 성장에 의해서 발행시장의 성장이 견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의 성장 메커니즘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성장이 느릴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매매할 물건이 적다는 것은 곧 유동성 부족과 비정상적인 호가의 빈번한 발생, 만성적인 고평가나 저평가 현상을 유발시켜 유통시장의 발달에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기에는 연기금의 장기 투자 수요와 투신권의 인덱스 펀드 및 주식형 펀드 중 인덱스 부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외국인 투자 수요 그리고 증권사(AP)의 시장 조성 활동에 의해 일정 수준의 시장 규모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다소 정체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ETF의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직간접적인 발행시장 참여가 필요하며, 그 중에서도 간접투자 비중의 확대가 요망된다. 아무래도 개인 투자자가 주식 투자의 위험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글: 심상범 대우증권 선물옵션마케팅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