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고언…“손잡고 살아남은 자연 생태계서 배워라”

유튜부 구독자 68.7만명, 과학계 셀럽
신간 `최재천의 곤충사회` 출간
으뜸 수컷 먹이 나누는 것처럼
`공존하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한국은 `기후깡패` 아닌 `기후바보`
재생에너지 등 발빠른 대응 필요
  • 등록 2024-02-21 오전 10:11:09

    수정 2024-02-21 오전 10:11:0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최재천(70)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호칭은 여럿이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의 영역은 넓다. 젊은 세대 사이에선 ‘워너비(가지고 싶은) 시아버지’로 불린다. 2020년 늦깎이에 시작한 유튜브가 돌풍을 일으키면서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계를 논하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구독자 수는 68만7000여명. 소멸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라고 직언을 날리는가 하면, 성심껏 상대를 공감한다. 2016년 초대 국립생태원장 시절,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 꿇고 상장을 건네주던 모습은 뒤늦게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기어코 찾아오겠다는 학생들에겐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게 그다. 지난 25년 동안 쉼 없이 신문에 칼럼을 썼고, 지금까지 번역하거나 직접 쓴 책을 모두 합하면 무려 100권이 넘는다.

불평등 심해지면 사회 붕괴…필요한 건 `공생`

최재천 교수의 새 책 ‘최재천의 곤충사회’(열림원)는 2013~2021년 그의 강연과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에세이집이다. 미국에서 생태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인간을 탐구하기에 이른 삶과 연구 이력, 생각 등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최 교수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사회적 화두인 양심과 공정, 경쟁과 협력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며 책을 소개했다. 이어 “그간 신문이나 잡지 칼럼에 쓴 글을 묶어 낸 에세이는 많았지만 이번에는 의미 있는 강연을 모아 그 녹취를 바탕으로 책을 냈다”며 “직접 쓴 글보다 강연에서 말로 전한 이야기는 톡톡 튀는 맛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문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최 교수는 “그동안 이 사회가 변화했으면 해서 목소리를 낸 일들이 제법 있다. 당시에는 그게 아무 효과도 없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것들이 분명 생기더라”라며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노력하면 국민 대다수가 이를 품는 걸 여러 번 봤다. 이게 대한민국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간에서는 인간과 다른 듯 닮은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책에서 곤충을 비롯한 자연의 삶을 “열심히 베끼자”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몇몇 식물들이 씨앗을 동물 털에 붙여 멀리 이동시키려고 고안해 낸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것이 찍찍이(벨크로)고, 이것이 의생학의 대표 사례”라며 “인간이 자연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가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공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물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그는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가 붕괴한다는 걸 동물 사회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동물 사회를 관찰하면 알파 메일(으뜸 수컷)이 혼자 다 차지하지 않고 나눈다”며 “인간 사회는 한번 쥐면 너무 많이 가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동물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인류가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심비우스’(공존하는 인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공생(symbiosis)에서 착안해 직접 만든 용어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을 의미한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공평을 주장하지만, 가진 자가 공평하게 살면 그런 사람들만 잘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평에 양심이 더해진 ‘공정’입니다.”

2016년 초대 국립생태원장 시절 어린이에게 상장을 주면서 눈높이를 맞추고자 무릎을 꿇은 최재천 교수(사진= 국립생태원 제공).
정부, R&D 예산 대폭 늘려야 쓴소리도

현 정부가 기술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기후 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데에는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1994년에 미국에서 귀국할 때만 해도 ‘한국도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날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오지 않았다”며 “우리나라 국가 전체 R&D 예산이 30조원 정도인데, 하버드대 기부금 총액이 50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국가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율을 자랑하지만 예산 액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 문제 관련해선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기후 깡패, 기후 얌체로 불리는데 내가 보기엔 기후 바보다. 재생에너지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반도체도 자동차도 팔 수 없게 되는데 정부가 빨리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로 인한 위기의 심각성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랜 연구 동료이자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의 말을 빌려 “우리는 끝내 해결책을 찾을 것이고, 그래서 희망적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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