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스로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이단아)임을 자처한 매케인 의원이 남긴 10가지 명암을 조명했다.
타협을 거부한 베트남전 포로 출신의 전쟁영웅으로서 초당파적 존경을 받으며 미 의회에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두 번의 대권 도전에 실패하면서 스스로 자책해야 할 순간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 “내가 제독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 매케인은 가장 유명한 베트남전 포로였다. 그는 악명높은 하노이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미 해군 사령관의 아들이던 그는 월맹군의 조기 석방 제의를 거부한다. 그는 2007년 지역신문 ‘애리조나 리퍼블리컨’에 “내가 제독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이 내게 석방을 제의했을까”라고 회고했다. 그는 5년간의 비참한 포로생활을 견디고 1973년 풀려났다. 회유와 고문에 굴하지 않은 그를 미국인들은 영웅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키팅 스캔들…“내 인생의 오점” = 1989년 매케인은 미 상원을 뒤흔든 찰스 키팅 스캔들에 연루된 5명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다. 1980년대 말 키팅의 기업이 파산하면서 그의 정치자금이 문제가 됐다. 매케인은 상원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뒤 ‘부적절한 처신’이 없었다는 면죄부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에 평생 별표를 붙이고 살았다.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되뇌이기도 했다.
▲ 세라 페일린, 애증의 부통령 후보 = 2008년 대선에서 매케인 후보는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내세웠다. 그해 8월 오하이오 유세에서 페일린을 ‘차기 미국 부통령’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정치 평론가들은 매케인의 선택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았다고 평가했다. 페일린이 만든 여러 네거티브 이슈는 결국 매케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상대후보 오바마를 변호하다’ = “그는 점잖은 가족의 구성원이자 훌륭한 시민이다” 매케인 후보가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와 대결하던 당시 공화당 유권자인 한 중년여성이 ‘오바마는 아랍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인종과 급진성향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매케인은 “오바마는 우리 시민”이라고 답해준다.
▲ 오바마를 축복한 명연설 = 2008년 11월 매케인은 애리조나 피닉스에 모인 수만 명의 지지자 앞에서 당선자 오바마를 위해 연설한다. “이것은 역사적인 선거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위해 특별한 순간이자, 그들을 위한 특별한 밤이다. 나는 미국이 근면과 의지를 지닌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케인의 연설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동시에 승자에게 가장 완벽한 지지를 부탁한 명연설로 남았다.
▲ 고문보고서 공개 옹호 = 국방위에 몸담은 매케인 상원의원은 9·11 테러 공격 이후 중앙정보국(CIA)이 조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자행한 고문 의혹을 파헤친 2014년 상원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했다. 자신이 전쟁포로로 고문을 경험한 매케인은 “진실은 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약과도 같다”는 말로 고문보고서의 공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 오바마케어 폐지법안 반대표(Thumbs down) = 시간은 흘렀고 찬반은 동수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인 오바마케어 폐지법안 표결 얘기다. 이미 건강이 크게 악화한 여든 살의 노장 매케인은 주저 없이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혈전 수술 자국이 선명한 매케인은 공화당이 의회의 정해진 규칙, 적법한 공청회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그 계획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 트럼프를 향한 말년의 쓴소리 = 매케인 상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 동맹을 등지고 도처에 적을 만드는 정책을 내놓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7년 리버티 메달 수상 소감에서 그는 “트럼프의 인기영합주의로 인해 우리가 그리고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