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상담해본 적 없는' 자살예방기관
충남의 한 농어촌지역 정신보건센터 담당자인 A씨는 이렇게 고백했다. 인구 8만의 이 지역 자살률은 10만 명당 64명 선. 전국 평균(31명)의 2배를 웃도는 수치지만 지역의 유일한 '자살예방기관'인 이곳에서 이뤄진 실질적인 상담건수는 '0건'이다.
이곳에는 A씨를 포함해 모두 3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것도 A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기간제인데다 불과 몇 달 전 채용됐다.
A씨가 해야 할 일은 자살예방 업무에 그치지 않는다. 치매, 우울증, 정신질환 등 정신보건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겸하고 있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일에 빼앗기기 일쑤다.
대도시로 눈을 돌려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최근 학내 구성원들의 자살이 잇따랐던 카이스트는 '연결되지 않는' 상담 전화번호를 수년째 건물 외벽에 방치했다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교내에도 상담센터가 있지만 이용해본 학생들은 "어렵게 고민을 털어놔도 '힘내라'는 틀에 박힌 말만 한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생·시민들과 '겉도는' 이런 상담센터는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 2번의 '자살 5개년 계획'…전문가 찾기는 아직도 '하늘의 별따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처한 자살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대책 마련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2008년에는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괄목할만한 성과는 없는 상태다.
임정수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자살 5개년 계획만 2번 세웠는데도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자살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며 "지역 정신보건센터나 자살예방센터가 생긴 것도 불과 2년 전이고 인력도 3~4명밖에 안 돼 사무실 지키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홍보 일색인 자살예방사업의 방향부터 전환해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도 있었다. 경찰대 이종화 교수(경찰학)는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이 광고 한 편에 마음을 바꾸지는 않는다"라며 "고위험군 한 명, 한 명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찰대에서는 자살시도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경찰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자살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위기협상전문가' 양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또 대전을 비롯한 일부 자살예방센터에서도 사회복지사와 노인돌보미 등을 대상으로 자살 위험에 노출된 어르신들을 조기에 발견하는 '게이트키퍼' 양성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각계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