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달 22일 경주에서 열린 G20재무장관 회의에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등으로 인한 신흥국으로의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제기됐고 거시건전성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우리 정부가 부담을 덜고 은행부과금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다.
◇ "금융시장 혼란의 주범은 단기외채".. 정부 특단대책 마련
지난 1997년 외환 유동성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단기외채를 꼽는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 이후 석 달(10월-12월) 동안 우리나라 은행권(예금취급기관)에서 무려 484억 달러의 단기차입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후 2009년 3월에는 달러-원 환율이 1600원 가까이로 올라 제2의 IMF사태를 우려하는 상황까지 가야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에게 단기자금을 빌려준 해외 금융회사의 사정에 의해 나라가 뿌리째 흔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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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2008년 하반기 우리 경제는 두 차례 `위기설`에 휩싸였다. 대규모 자금이탈로 환율과 금리가 폭등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009년 2월~3월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즈 등 외국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퉈 위기설을 부추기기도 했다.
정부는 결국 이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번째 대책을 마련했다. 지난 6월 선물환 포지션 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자본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이 그것이다. 단기외채를 사전에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우리는 대외개방도가 높기 때문에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금융시장 불안전성이 커지고 이런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위축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경험한 바 있다"며 특히 "은행부문을 통한 차입의 변동성이 높았고 그 중에서도 외은지점을 통한 단기 차입의 변동성이 높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달 말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선물환 포지션 제도가 어느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여전히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추가 대책`은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부과금을 비롯해 채권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부과,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추가 축소 등 추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신현송 보좌관 "은행 단기외채 제어장치가 가장 중요"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단기외채에 대해 오래전부터 경고음을 보내왔다. 대표적으로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프린스턴대학 교수)은 지난 2월 발표한 정책보고서 (Non-Core Liabilities Tax as a Tool for Prudential Regulation)에서 “외국계은행 서울지점들이 단기외채를 끌어들이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저금리로 해외자금을 빌려온 이들은 통화스왑 시장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운용하는 캐리트레이드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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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보좌관은 "호황기에 은행들이 몸집불리기를 하면서 무분별하게 빌린 단기외채는 경기위기 시 급격히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주범이 됐다"면서 “은행들이 단기외채를 운용하는 행태가 가장 큰 문제고 이에 대한 제어장치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삼성硏 “외환건전성 보조수단으로 활용필요”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은행부과금 도입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복되는 한국 금융불안, 그 진단과 해법`이라는 보고서에서 “외환건전성 감독·규제 강화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은행세를 관리 감독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은행세는 모든 부채에 과세하지만, 국제통화 사용국이 아닌 한국 등 신흥시장 국가는 금융시장 교란역할을 하는 외채 또는 단기외채에 부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도입 취지는 좋지만 외은지점이 지점을 폐쇄하고 외국에 있는 본점에서 (부과금을 피해)직접 달러를 대출하게 된다면 국내 은행 경쟁력만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부담금이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은 지난 7월 한 보고서에서 "속성상 홈베이스가 강한 은행산업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영업기반을 옮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소비자에 대한 비용 전가 우려에 대해서도 "예금보험제도 도입 당시에도 소비자전가가 우려됐으나 그렇게 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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