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만기, 짧아도 너무 짧다

지난해말 현재 잔존만기 16개월..미국 유럽에 비해 현저히 짧아
경기하강시 침체 증폭 우려
신용경색 등 금융불안 가능성
  • 등록 2006-06-14 오후 12:00:00

    수정 2006-06-14 오후 12:00:00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기업대출이 1년미만으로 운용되는 등 만기가 너무 짧아 향후 경제에 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경우 대출 만기연장이 막혀 신용경색이 촉발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경기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은행대출의 만기구조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우리나라 기업대출의 잔존평균만기는 16개월 수준으로 27개월의 미국이나 55개월의 유럽에 비해 현저히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대출 만기가 짧은 것은 1년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대출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현재 전체 기업대출중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대출이 77%에 이르고, 계약시점과 대출만기의 기간이 1년 이내인 대출의 비중도 65%에 달한다. 반면 5년이 초과하는 장기대출 비중은 잔존만기로는 7%, 계약기준으로는 10%로 미미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는 기업대출이 우리나라처럼 단기대출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잔존만기가 1년을 초과하는 대출이 36%로 우리나라의 23%보다 높다. 또 독일 등 유로권 국가들은 계약만기가 5년이 넘는 장기대출이 절반을 넘어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만기구조를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대출 만기가 특히 짧은 가장 큰 배경으로 한국은행은 우선 단기대출 위주의 기업여신 관행과 은행들의 리스크관리 역량 부족을 꼽았다. 대출이 대부분 운전자금대출 중심으로 돼 있고, 금융자유화로 장기금융업무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어졌는데도 단기대출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또 제조업 설비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산업구조가 서비스업중심으로 바뀌면서 부동산관련업, 임대업, 건설업,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등으로의 시설자금대출이 늘었지만 이들 업종의 투자기간이 짧아 대출만기도 짧아졌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 금리가 하락하다 보니 기업들 입장에서 장기대출을 받는 것보다 단기대출을 받아 계속 만기를 연장해 가는 것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고,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장기대출의 이점이 줄었다.

이밖에도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대한 유동성비율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유동성자산인 유가증권 비중은 줄어들고 가계대출이 장기화되자 상대적으로 기업대출 만기는 짧아지는 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대출이 너무 단기라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 시설투자의 위축, 은행의 리스크관리능력 발달 저해, 금융불안 등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가 좋을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경기가 악화될 경우 은행 대출문턱이 높아지면서 만기연장이 어려워지면, 안전한 곳에만 돈이 몰리는 신용경색 현상이 촉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경기는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증폭될 위험이 있다.

정길열 한은 금융안정분석국 은행연구팀 정길영 차장은 "우리나라 은행의 기업대출 평균만기는 직접금융시장이 발달한 미국보다는 조금 길고, 유니버설 뱅킹을 추구하는 유럽보다는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대출을 장기화시키기 위해서는 은행과 기업의 관행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도개선도 시급한 실정이다.

정 차장은 "은행들이 통상 운전자금 만기는 1년이내로, 시설자금은 10년 이내로 내규화하고 있다"며 "장기대출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식해 대출규모와 용도, 기업의 투자회임기간, 상환능력 등을 고려해 대출만기를 신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내규상의 대출관련 제한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말 현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시설자금 보증비중이 8.7%로 중소기업대출중 시설자금대출 비중 16.4%를 크게 밑돈다"며 "다양한 시설자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관의 시설자금에 대한 보증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동성비율규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출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규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방식을 변경하고, 단기부채의 일정비율을 무위험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도록 하거나, 규제대상 자산부채의 최장 만기를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차장은 "이밖에 위험이 높은 장기대출에는 그만큼 금리를 올려 받는 식으로 대출금리 결정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고, 금리스왑 등 파생상품을 적극 활용해 금리 변동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또 단기예금 중심으로 돼 있는 수신구조를 장기화하고 장기대출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 발행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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