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②김용범 삼성투신 본부장(상)

  • 등록 2001-03-16 오후 2:17:16

    수정 2001-03-16 오후 2:17:16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삼성투신운용의 김용범 채권운용본부장이다. 그는 이번 삼성그룹 인사에서 상무보로 승진했는데 금융그룹내에서 30대 임원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화려한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13조원의 채권투자자금을 때로는 세련되게 때로는 야수처럼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투신이 대우채 문제로 휘청거리던 99년 겨울, 그는 안정적인 외국계 은행(CSFB)을 박차고 나와 삼성투신으로 왔다. 김 본부장은 “그 때 부하직원들하고 술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술과 말과 논리로 펀드매니저들을 단련시켰다. 그 결과 삼성투신운용은 지난해 매일경제신문이 선정한 펀드수익률 1위 투신사에 등극했다. “투자의 요체는 갈등관리라고 생각합니다. 공포와 탐욕 사이의 전쟁이죠. 시장의 컨센서스(consensus)를 따라가면 절대로 초과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펀드운용은 치열하게 해야죠.” 태사자의 품성과 하이에나같은 근성 부하직원들은 그를 “태사자”라고 부른다. 채권을 살 때와 팔 때, 선이 분명해 마치 "사자" 같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그러나 “훌륭한 펀드매니저는 하이에나 같은 근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임원이 됐지만 펀드딜링은 계속할 것”이라며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것, 시장과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이 공개한 그의 운용전략과 최근 시장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하단 참조) -인터뷰가 처음이신가요? ▲처음은 아닌데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서 좀 긴장됩니다.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는 말을 논리정연하게 해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만 저같이 딜링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장상황에서 전화로 매매하다보면 존칭이나 안부인사의 생략은 물론 대부분의 용어를 줄여서 말하게 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기도 하구요. 욕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거칠다는 말도 많이 듣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그럼 부하직원에게도..(웃음) ▲그렇게는 안합니다.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말이야 하겠습니까. 사물에 대한 표현을 거칠게 하면 되는 걸요. 예를 들어 “야 X같이 이것 밖에 못해오냐” 이렇게요. -본부장님께서 속된말로 표현할 때 현재 "주무르는" 돈은 얼마나 됩니까? ▲15조입니다. "펀드규모에 따라 행동방식이 달라야" -돈의 규모를 인식하시나요? ▲물론입니다. 듀레이션을 맞출 때, 시장에서 빠져나오고 싶은데 제가 컷하면 시장이 휘청거려서 그렇게 못할 때 등등. 그럴 때는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이 돈이 참 많구나" 라구요. -삼성투신이 시장에 본의아니게 임팩트를 몇 번 줬는데요. ▲시가평가 펀드가 8조원 정도로 크다보니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것이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대한생명에서 주식운용할 때, CSFB에 있을 때, 또 삼성으로 옮기면서 펀드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텐데요. 운용태도나 마음가짐이 달라지던가요? ▲대한생명에서는 주식으로 1800억원 정도를 운영했습니다. 그때가 89`90년이었는데 장이 좋아서 별 부담은 없었어요. 저는 모멘텀 플레이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펀드규모에 대한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시장참가자들과 교류가 많지 않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연합을 한다고도 하지만. 저희는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기에 그렇게는 안합니다. CSFB에서는 채권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채권 운용규모가 2조원 정도였는데, 지금 삼성투신에서보다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 팔면 그만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제가 팔고 싶다고 해서 팔 수도 없고, 팔아도 돈 자체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볼륨이 너무 커서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사이즈가 커지면 적응기간이 당연히 필요한 겁니다. 작년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엔 4조 정도면 적당한 운용범위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시장의 조그만 파동에서도 먹을 수가 있죠. 수익을 내기 위해선 될 수 있으면 조그만 일들은 무시하고 신경쓰지 않는 편입니다. -지난해 매경에서 선정한 수익율 1위 펀드가 됐는데..1등을 유지하는 것도 많이 어렵겠습니다 ▲원해 저희가 의도했던 건 1등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했다기보다 다른 쪽에서 못했다고 하는게 맞겠죠. 7위 안에만 들면 된다고 봤습니다. 올해도 목표로 하는 수익률 범위 자체는 별로 넓지 않습니다. 올해 채권시장 한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올해 시장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움직일 계획이십니까? ▲금리가 올라갈 때는 장사가 없습니다. 규모를 많이 줄이고, 금리변동에 알맞은 상품 비율을 높이고...그 방법밖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작년처럼 금리가 한 방향으로 가지는 못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마 그렇게 못할 겁니다. 작년보다 시장의 변동성도 훨씬 커졌기때문에 한방향으로는 안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거느리는 펀드매니저가 모두 몇 명입니까? ▲저를 포함해서 11명입니다. 저도 직접 딜링을 합니다. "투자의 요체는 갈등관리" -후배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개개인마다 특성이 다를텐데 ‘이런 스타일이 펀드매니저에 적합하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하직원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시장과 가까이있다가 멀어지다가 하는 등의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죠. 마인드컨트롤을 잘해야한다고 할까요. 투자의 요체는 갈등관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특성은 그 다음 요소죠. -최근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가 펀드매니저였는데. ▲잘 몰라서 그러는 거겠죠. 사실 이 직업은 참 거지같은 직업이기도 해요.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솔직하게 표현해서 돈 많이 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습니다. (웃음) -그렇지만 10년 넘게 펀드매니저를 했다는 것은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능력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웃음) 매력적인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남들 신경써가며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죠. 한국적인 상황에선 능력과 관계없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이 개입됩니다. 결국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건데 서양인들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해집니다. 물론 인간사에서 정치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7:3이나 8:2 정도로 일에 우선 순위를 둡니다.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죠. 잘 아시겠지만 자신의 일이 성과가 측정가능하거나 수치가 명확한 일이 아니라면 정치적인 행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직업은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자기가 뛰어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또 생각하는 것을 바로바로 옮길 수가 있고 시장에 의해 즉시 평가받으니까 지루하지 않습니다. "공포와 탐욕 사이의 전쟁" -갈등관리의 중요성을 주장했는데 본인이 갈등관리를 잘하지 못한 경험은 없습니까? ▲자주 느낍니다. 굉장히 많이.(웃음) 최근의 예를 들자면 1월달에 많이 먹었는데 줄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해서 손해를 입었죠. 항상 아주 나쁜 상황일 때 여기서 그만두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을 경험으로 자주 체득해야만 합니다. IMF 때도 롱 포지션을 취해서 많은 수익을 내고 상황을 접었더니 내가 먹은 것의 2배 이상이나 더 가더군요. 갈등관리라는 말을 왜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트레이딩이나 투자는 달리 표현하면 공포와 탐욕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공포감이 많으면 지를 때 못 질러서 못 먹고, 겁이 너무 없으면 한 순간에 죽을 수가 있습니다. 양자의 균형을 잘 맞춰야하는데 그게 무척 어렵죠.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는 “히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서 알 파치노가 형사로 나오는데 재혼한 부인과 늘 사이가 안 좋습니다. 자기가 어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부인과 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기분이 망가져서 집에 들어왔는데 부인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말을 안해주냐? 우리는 그런 것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멀어진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 때 알 파치노가 “형사라는 직업은 불안이라는 것을 가슴에 넣고 살아야만 한다. 그게 우리를 예민하고 날이 서게 만든다.” 라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아 내 직업과 정말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적인 평안을 원하면 이 직업을 택하면 안됩니다. 박동치는 불안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야죠. 외환위기때 공포감 잊혀지지 않아 -가장 불안하고 공포스러웠던 때가 언제입니까? ▲외환위기 때. 그 때는 상황이 마치 “신들의 풍차”처럼 느껴지더군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속으로 ‘나도 자식 놓고 살아야하는데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시장 컨센서스대로 가면 항상 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못 이깁니다. 제 경우엔 통계적으로 결과를 내보진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제일 불안한 상황에서 질렀을 때 결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다 나쁘다고 할 때는 들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하지만 좋을 때는 다 들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팔아야만 하는 데 누가 그걸 사주겠습니까. -시장과 반대로 베팅해서 기분좋게 딴 경험이 있습니까? ▲몇 번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작년 상반기만 해도 우리 애널이나 이코노미스트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점차 채권수익률이 올라간다’ 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정반대였습니다. 시장과 반대로 생각해본다 -단순히 시장이 그랬으니까 반대로 가진 않았을텐데요.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우선 경기회복에 대한 속임수가 있었죠. 99년 경제상황의 베이스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많은 회의를 가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겁니다. 작년에 은행대출이 무척 늘어났는데 개인비중은 30%도 채 안됐습니다. 기업들 대출은 부채비율을 줄이는 데 사용됐기에 자금 트래픽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용전략을 짜는 일은 얼마나 자주 하나요? ▲매주 합니다. 어떨 때는 매일하죠. 시장이 워낙 자주 변하니까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모두 모여서 의견을 나눕니다. 펀드매니저와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 스트래티지스트까지 모두 얘기합니다. -회의 분위기는요? ▲말을 안하면 제가 할당시킵니다. 투자란 건 그렇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보는 견해가 다르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어렵고 온갖 말이 다 나오지만, 실은 간단합니다. 이 가격에서 살 거냐, 팔 거냐, 가만있을 거냐.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말하는 방법도 중요합니다.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두괄식입니다. 결론 뭐, 가격 얼마, 종목 무엇. 이렇게 말하면 끝입니다. 사실 전 아주 편한 입장이에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다 듣고 나서 마지막에 말 한마디 하면 되니까요.(웃음) -시장이 급변해서 시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딜러들이 많은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를 수는 있어도 정한 방향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정한 방향은 장중에 바로 평가가 납니다. 맞든 틀리든 간에 말이죠. -그럼 틀렸을 때는 어떻게 방향을 수정합니까? ▲시장에 관해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 건 세 번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입장은 취해야하니까 부하들보고 “질러” 라고 소리쳤었습니다. 두 번 맞고 한 번은 박살났습니다.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 영향을 준 상사가 있습니까? ▲CSFB에 근무할 때 앤드류 입겐넌즈라는 상사가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고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판단력이 대단히 뛰어났어요. 호주사람이었는데 영연방권에서는 경제분야에 고졸출신들이 많습니다. 존 메이저 전 총리도 고졸출신이죠. 그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머리가 잘 돌아갈 때의 젊은 사람을 데려다 트레이딩을 시킵니다. 아주 효과적이죠. 이 앤드류 입겐넌즈라는 사람은 남들이 뭐라 건 자신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일은 안합니다. 남들이 다 아니라해도 자기가 따져봐서 말이 되면 밀고 나가는거에요. 그가 주장했던 것이 “남들이 다 좋다고 할 때가 가장 나쁠 때” 라는 말인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까 언급한 공포감을 잘 조절하는 사람의 예인가요? ▲그렇습니다. 심리적으로 편안할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을 취할 때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절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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