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달러/원 환율이 25개월만에 최고인 1254원까지 치솟았다. 단기타겟이었던 1250원선을 가볍게 무너뜨림에 따라 다음 목표점은 1300원대로 높아졌다. 일부 극단적인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현 추세라면 당장 27일에라도 1300원 환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있다.
이런 전망의 한켠에는 ‘은행들의 해외점포 부실자산 충당금 적립을 위한 수요가 대거 잠복해있다’는 불길한 소식도 자리잡고있다.
◇외환시장 심리적 공황상태
이날 환율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내심 목표점으로 삼았던 1250원선이 가볍게 무너지고 추가상승 여력을 확인한 채 거래를 마쳤다. 은행들이 투기적 거래에서 한발 물러선 가운데 기업들은 달러를 사는데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이날 현물환 거래규모는 평소의 절반인 11억달러에 머문데 비해 장중 환율상승폭은 17.70원에 달했다. 시장이 그만큼 얇았다는 얘기다.
A은행 한 딜러는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각각 구두개입을 단행하고 국책은행을 통해 2억~3억달러의 물량을 공급했는데도 기업들은 물량이 나올 때마다 받아먹었다”며 “당국의 개입을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는 양상이었다”고 전했다.
◇황소뿔 장세(Bullish Market)
달러를 움켜쥐고있는 수출업체들이야 다행이지만 수입업체들은 비상이다. 결제수요를 앞당겨 채우려는 기업들로 아우성이었다. 몇몇 시중은행들은 밀려드는 기업들의 달러매수주문을 받느라 눈코뜰 새 없었다.
B은행 딜러는 “개입성격이 강한 달러가 시장에 나올 때마다 2~3원쯤 밀리다가 곧 강하게 반등한 것으로 볼 때 시장분위기는 매우 불리쉬(Bullish)하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강세를 보일 때 Bullish Trend라 부른다. 황소의 경우 뿔을 무기로 하여 밑에서 위로 치받아 올리는 형태로 싸우는데 이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상승하는 모양’으로 간주, 강세장의 모습으로 나타낼 때 Bullish Market이라고 표현한다.(이두희 국제금융연수원 교수)
◇아직도 숨어있는 달러수요들
C은행 딜러는 “일부 대형은행의 경우 해외점포 부실채권 충당금 적립을 위한 수요가 수억달러씩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주안에 외환시장에서 달러수요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환율의 추가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얼마전 각 은행을 대상으로 외화자산 충당금 수요를 파악한 일이 있으며 충당금 적립을 위한 달러매수는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않도록 조용히 하라고 당부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D은행 딜러는 “우리의 경우 이미 해외부문 충당금 적립수요까지 감안해 지난주까지 다 확보해놓은 상태”라며 “대형시중은행의 경우 그 수요는 5억달러 안팎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미 달러를 확보한 은행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아직 사야할 달러가 남아있는 은행은 외환시장에 큰 위협이 되는 셈이다.
◇환율 어디까지 오르나
일단 시장참가자들 사이엔 ‘당국의 직접적인 대규모 물량공급이 없다면 1300원대 환율이 멀지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그 시기는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고 한다.
E은행 딜러는 “환율급등추세가 꺾이려면 더 이상 환율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공감대가 있어야한다”며 “내년초까지 현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기업들이 달러를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엔화를 비롯, 동아시아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점도 원화환율에는 상승요인이 누적되는 셈이다.
이제 시장심리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국의 대규모 직접개입이지만 당국으로선 쉽지않은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지금 시장흐름과 맞서싸우다 실패할 경우 그 후유증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재경부는 구두개입에서 “12월중 무역수지의 대폭흑자등을 배경으로 한 시장분위기 반전 가능성등을 감안할 때 시장참가자들의 합리적인 매매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F은행 딜러는 “시장심리가 이미 달러매수쪽으로 급격히 기운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당국의 선택이 결정적인 변수”라며 “재경부 고위당국자가 얘기한 ‘시장분위기 반전가능성’을 유의하고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