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 등록 2014-12-31 오후 12:00:00

    수정 2014-12-31 오후 12:00:00

[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2015년 새해의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먼저 그 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자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신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해 4월 평생 몸담았던 한국은행으로 돌아온 이후 총재직의 무거운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성취감과 보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쉬움을 느낀 일들이 더 뚜렷이 기억됩니다.

총재 취임 때부터 시장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관성 있는 정책신호를 보낼 수 있고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 대내외 충격 등으로 경기흐름이 크게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고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늘리는 등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한층 더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할 정도로 경기 회복세는 미흡했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장기간 목표범위를 하회하면서 통화정책기조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낮은 물가상승률이 국제유가 및 농산물 가격의 하락 등 공급요인에 주로 기인하는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을 물가목표 달성만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판단을 경제주체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것이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임직원 여러분!

올해는 경제상황이 지난해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개선, 국제유가의 큰 폭 하락,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의 효과 등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에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경제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들이 성장동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의 경직성, 부문간 불균형, 과도한 규제 등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고 일부 주력산업의 경쟁력도 저하될 우려가 있습니다.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소비여력을 제약하고 금융안정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대외여건 면에서도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할 수 있는 요인이 곳곳에 잠재해 있습니다. 유로지역 및 일본 경제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계속 둔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로 국가간 자본이동과 금리, 환율 등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제유가 급락이 세계경제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산유국의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국제금융시장 불안 가능성 등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 또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정부도 구조개혁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금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수립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책방향의 올바른 설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차질 없는 실천이라 하겠습니다. 기업, 금융기관,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구조개혁에 동참하고 그에 수반되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성장의 과실을 오래 향유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이제 우리 한국은행이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업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통화정책은 물가안정기조 위에서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되 금융안정에도 유의하면서 운영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상당기간 국내경제의 회복세가 완만한 가운데 물가도 낮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경제성장이나 금융안정 그리고 물가흐름 등의 상황 변화를 상시 점검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여 정책을 적시에 실행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제예측모형과 전망작업 절차의 개선 등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며, 이와 더불어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등이 시장과의 소통 수단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꾸준히 보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내년 이후 적용할 물가안정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환경 변화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물가안정목표의 적용시계, 변동허용범위, 대상지표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분석하여 최적안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책무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금융안정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대외 위험요인은 주로 금융·외환시장을 통해 국내로 전이되는 만큼 국제금융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위험 징후가 감지될 때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겠습니다. 최근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취한 정책의 효과가 반영된 현상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 축적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한층 더 주의 깊게 점검하고 정부 및 감독당국과 협력하여 이를 완화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금융환경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여 시스템적 리스크 점검주기를 단축하고 지급결제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핀테크(FinTech)에 대한 감시체계를 마련하는 등 금융시스템 안정성 강화를 위해서도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구조개혁의 성공적 실행을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정책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한 연구 검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운용 목표나 수단이 크게 달라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미래상을 어떻게 설정할 지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지난해 총재로 취임하면서 저는 내부경영과 관련해 세 가지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업무능률을 제약하는 경영관리시스템이나 업무수행 방식을 개선하고,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본연의 기능을 보다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을 정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인사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쌓아 온 실적과 평판을 중시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저의 약속은 단계적으로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경영개선 과제에 대한 여러분들의 견해를 수렴하였고 이중 필요성이 인정된 사안들은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금융시장과의 소통 원활화와 통화정책 관련 연구기능 확충을 뒷받침하는 한편 금융안정 기능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도 재정비해 나갈 것입니다. 인사도 제가 제시했던 기준에 맞추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경영관리시스템, 조직, 인사 등은 일을 잘 하기 위한 하드웨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떨어진다면 전체 시스템이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은행이라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즉 우리들의 일하는 자세와 방식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연하고 능동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과 같이 경제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관성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임직원 모두가 한국경제 전반의 현안과제와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해 늘 생각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직원이 많을수록 좋은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이를 토대로 현실적합성과 시의성이 뛰어난 정책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의와 애정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개개인에게 주어진 업무는 아무리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당행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을 일으키면 거대한 우주선도 공중에서 폭발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한다면 업무에 대한 열정도 자연스레 더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금년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큰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행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여러분의 우수한 역량과 자질에 더하여 업무자세 또한 새롭게 가다듬어진다면 우리 경제가 오늘의 어려움을 딛고 재도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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