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경기부양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적어도 상반기중에는 재정·통화·외환 등 거시 경제정책 수단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주력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 지 종잡을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대응여력을 소진한다면, 정작 세계경제가 경착륙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마땅히 대응할만한 수단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는 마당에 섣부른 부양책이 제대로 먹힐 리 없다는 생각도 이같은 정책방향에 일조하고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1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 답변과 12일 월례 경제동향 설명회에서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경기부양이나 증시부양은 효과가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의 경제전망에 대한 예측이 크게 엇갈리는 등 작금의 경제상황이 너무나 불투명해 우리의 방향을 미리 확정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진 부총리는 "미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2.4%로 잡고 있으나, 많은 연구기관들이 2% 미만을 예측하는 등 전망치의 편차가 60∼70%에 이른다"며 "이같은 편차를 우리 경제에 적용할 경우 연간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안개 속의 현 세계경제 상황을 설명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일수록 경제상황 전체를 보다 냉정하게 관찰, 6월쯤은 돼야 보다 정확한 전망치를 놓고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진 부총리의 생각이다.
11일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회견에서 진 부총리가 "무리한 금리인하나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상반기중 재정과 통화, 외환정책의 여력을 충분히 비축한 뒤 하반기 이후 혹 있을 지 모를 세계경제의 급격한 침체에 대응하겠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재정분야에서 추경편성 및 감세 등 지출확대는 상반기중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며, 금리인하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전망이다.
외환정책과 관련해서도 그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투입하겠다`는 최근 한국은행의 발표를 `헤프닝`으로 규정하며, `심리적 공황과 투기발생` 등 두가지 전제 하에서만 외환보유고를 쓰겠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통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불안이 심화되는 세계경제의 현실을 감안, `실탄`을 함부로 소진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세계 5위의 외환보유국임을 내세워 외환보유고 정책을 `확충`에서 `유지`로 전환했던 불과 석달전의 방침에서 유(U)턴, 보유고를 당분간 더 쌓겠다는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이는 외환시장의 과도한 움직임은 억제하되, 엔화 등 주변국 통화 변동이 시장에 합리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수용할 것이란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정해지도록 할 것"이라든가 "시장 가격변수가 여건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운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거듭 강조되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문제는 상반기중 충분한 여력을 확보해 둔다 하더라도 거시정책 수단의 실효성은 과거보다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우리 금융시장이 일본 엔화 및 미국 주가 움직임에 거의 전적으로 좌우될 뿐 독자적인 자금시장 대책 등은 근본적 한계를 보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진 부총리 조차도 11일 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인하는 성장을 회복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이같은 한계를 인정했다.
산업연관표상 98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는 30.7%로 지난 95년의 24.9%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한국은행의 12일 발표도 이를 실증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수요는 크게 위축된 가운데 수출이 성장을 주도해 온 결과다.
따라서 향후 경제정책은 거시정책 수단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과 더불어, 대외 의존도를 축소해 거시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도 노력이 기울여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