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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이데일리 등이 참석한 국제금융협회(IIF) 기후금융 서밋에서 “전세계 투자 자금은 더 지속가능한 사업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 흐름에 함께 하지 않는 기업들은 자사의 주식 수요가 감소하는 걸 목격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ESG 외면하는 기업 투자대상에서 제외
핑크 회장은 국제금융계를 달구고 있는 ESG 투자의 불씨를 처음 당긴 인사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ESG는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다. ‘착하게 살자’는 식의 윤리 경영이 아니다. 일상을 바꾼 코로나19 팬데믹, 이상 폭설·한파 같은 기후변화 등 비전통적 리스크에 기업이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 지를 투자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겠다는 게 ESG 투자의 근간이다. 핑크 회장은 지난해 연초 기업 연례 서한을 통해 ESG 경영을 압박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블랙록은 운용자산 규모가 8조68000억달러(약 96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큰 손’이다. 한국만 봐도 삼성전자(005930), 신한금융(055550), 네이버(035420), 카카오(035720) 등 대기업들의 주요 주주다.
블랙록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금융정보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전체 지속가능 관련 펀드들에 몰린 자금은 511억달러(약 56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214억달러)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했다. 54억달러의 자금이 들어왔던 2018년 이전에는 ESG 개념 자체가 생소했는데, 핑크 회장의 한 마디에 돈이 몰려든 것이다. 지난해 511억달러 중 절반에 가까운 231억달러는 블랙록의 i쉐어즈 상장지수펀드(ETF)에 몰렸다. 블랙록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핑크 회장은 또 ESG 경영으로 위장하는 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린 워싱은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지만 녹색 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사업을 분할 혹은 매각하는 식의 경영은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 기업은 ESG를 강화하는 것처럼 위장해 사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로만 ESG를 외치는 기업을 감시해 걸러내겠다는 경고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블랙록은 지난해 투자한 69개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ESG 경영과 관련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191개 회사는 감시 대상(on watch) 리스트에 올렸다.
핑크 회장은 “약 4년 전만 해도 우리의 이런 메시지는 (우리가 투자한) 약 40%의 기업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며 “하지만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는 서한을 보내면 반발하는 기업은 10% 미만”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환경운동가여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며 “투자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SG 투자가 월가에서 큰 흐름으로 자리잡자 금융감독당국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거론되는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역시 이번 IIF 서밋에 나와 “기후 변화와 관련한 금융 리스크의 추정은 매우 불확실하다”면서도 “주요 금융사들과 당국이 미래에 닥칠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움직이는 걸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준은 기후와 관련한 여러 고려사항들을 어떻게 금융 감독 업무에 포함해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다른 중앙은행들도 기후 변화를 당초 업무에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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