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 북미대화 후(後) 남북정상회담’ 文대통령, 2단계 해법 제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 신중론
정상회담 기정사실화 분위기에 부담…템포 늦추며 속도조절론
지지율 60%대 초반·지방선거 역풍 고려할 때 서두를 이유 없어
평창외교전서 북미대화 강조…한미군사훈련·北추가도발 중대 변수
  • 등록 2018-02-18 오후 4:29:48

    수정 2018-02-18 오후 4:29:48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 내 운영인력 식당을 방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식사하기에 앞서 격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남북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는 뭘까?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인 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의지와 가능성을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라는 것.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지난 10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의 청와대 접견에서 밝혔던 ‘조건부 수용’에서 한 걸음 후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평양 방문 요청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대답한 바 있다. 정상회담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북미관계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先) 북미대화 후(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2단계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조건부 수용’에서 ‘우물가 숭늉’으로 전략적 후퇴 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대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가장 적극적인 대화의지를 보이며 남북정상회담을 요청했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친동생으로 백두혈통의 일원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남이 화제였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이라는 예상밖의 메시지도 나왔다. 과거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 제1·2차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우리 측의 제안으로 성사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제의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라는 전제를 달고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했다. 이후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설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정상회담 개최 시기로 6.15설과 8.15설이 흘러나왔다. 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구체적인 대북특사로 거론됐다. 아울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남북문제 조율을 위해 대미특사로 방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쏟아졌다. 남북정상회담 과열론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이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와 국무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말을 아꼈다. 지지율 고공행진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굳이 과속했다가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역풍도 우려된다. 문 대통령이 ‘조건부 수용’에서 ‘우물가 숭늉’을 언급하며 속도 조절에 나선 이유이다.

북미대화 없는 정상회담은 사상누각…북미대화 중재 승부수

문 대통령의 인식은 북미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 진전 조치 없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1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핵개발 이전이었고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우호적이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 역시 남북한과 미중일러간 북핵 6자회담이라는 외교적 해법이 모색됐다. 문 대통령의 관심은 역시 ‘북미대화’다. 지난 10일 북측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북미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평창외교전 화두도 늘 북미대화였다. 지난 8일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비핵화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과제는 남북간에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어떻게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까지 이어가 북미간 대화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남북정상회담을 지렛대 삼아서 북미대화의 진전과 북한의 비핵화 프로그램의 실질적 이행을 담보하는 것이다. 과거 베를린구상에서 언급했던 한반도 운전자론의 연장선이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말은 여전히 거칠지만 북미 양측은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미국의 선제타격론이 충돌했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대화국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다만 북한은 핵무력 포기없는 양자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 역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대화도 없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평창올림픽 이후다. 휘발성 짙은 이슈는 한둘이 아니다. 4월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둘러싼 북미갈등은 물론 북한의 추가 도발이 최대 변수다. 북미가 한발씩 양보하면 남북정상회담은 가시권에 접어들고 반대로 첨예하게 맞부딪힐 경우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북미대화의 성사를 위해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한 대목이다. 시금석은 한미정상간 통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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