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협의에서 소득 하위 80% 지원을 확정해놓고도 여권의 전국민 지원 주장에 밀리면서 애매한 기준이 정해진 것. 피해·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던 정부 입장도 무색해졌다. 소득을 기준으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나눔에 따라 형평성 논란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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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정치가 내고 정부는 따라오라” 與 압박
25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34조9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지원금 규모는 17조3000억원이다. 이 중 가장 많은 11조원을 국민지원금으로 배정했다. 지급 대상은 가구 소득 기준 하위 80%에 맞벌이·1인가구 소득 기준을 완화하면서 178만가구가 추가됐다. 지원 대상은 전체 국민의 87.8% 수준이다.
정부는 2차 추경안 편성 당시 소득 하위 70%에게 지원금 지급안을 제시했다가 당정 협의 과정에서 80%로 확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경기 충격이 예상되자 여권 중심으로 전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전국민 지원을 당론으로 정하고 연일 정부를 압박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회에서 “길은 정치가 내고 정부는 낸 길을 따라가야 한다”며 정치적 결정이 우위에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와 추경안을 합의한 것은 여당이지만 정작 국회 가서는 협의안을 대놓고 뒤집으려고 한 것이다. 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고소득층도 지원할 명분이 없고 재정 운용은 정치 결정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며 전 국민 지원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코로나19 정책 대응 과정에서 정치권 입김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회의의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세워도 국회에서 바뀌거나 공은 정치권이 가져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정책을 세울 때마다 반대 여론이 거세니 무력감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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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넓게 포함했다지만…사각지대 여전
정부는 소득 하위 80%를 지원하면서 맞벌이와 1인가구에 대해서는 소득 기준을 완화해 중산층을 좀 더 넓게 포함했지만 형평성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지원 대상이 아닐 경우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방식이다 보니 하위 80%가 지원금을 받아 80.1%보다 소득이 더 늘어나는 역전현상이 대표적이다. 일례로어 홑벌이 3인가구의 월 소득이 717만원이라면 하위 80%에 해당해 1인당 25만원씩 100만원을 받게 되지만 718만원인 3인가구는 대상에서 제외돼 오히려 전체 소득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상위 약 12%만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추경안 통과 후 한 방송에 출연, “아동소득 (지급) 때 상위 10% 대상자를 골라내는 비용이 더 들어 100%로 바꿨다”며 “세금 많이 낸 게 무슨 죄라고 굳이 골라서 빼느냐”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고소득층의 소득은 줄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1분위(하위 10%)의 근로소득은 전년동월대비 14.1% 증가한 반면 10분위(상위 10%)는 오히려 5.1% 감소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의 경제적 결정보다 국회의 정치적 결정이 우위에 있다 보니 포퓰리즘적 요인들이 더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피해 회복이 시급한 피해계층 위주로 지원금을 더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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