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근 엔/원 환율이 급등하면서 엔화표시 대출이 많은 기업들은 걱정이 많아졌다. 엔/원 환율이 더 오를수록 만기상환때 갚아야 할 원화환산 부채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달러/엔 환율이 오를 때마다 "엔약세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최근 여러 연구기관들의 분석결과는 그와 사뭇 달랐다. 이젠 수출문제 못지않게 엔화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엔/원 급등..역외 투자은행 손절매 탓?
엔/원 환율은 지난 6일 100엔당 994.59원에서 7일 1006.70원으로 12.11원이나 뛰며 50여일만에 1000원대를 회복한 데 이어 8일에는 1026.70원으로 고시되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이날 상승폭은 7개월래 최고였고 고시환율은 지난해 12월3일 1029.56원이후 100여일만의 최고를 기록했다. 엔/원 환율은 12일 100엔당 1027.63원으로 고시됐다.
엔/원 환율이 이처럼 상승한 데는 역외의 국제투자은행들이 큰 역할을 했다. 즉 국제투자은행들은 그동안 엔약세를 전망하며 `엔 매도→달러 매수`·`달러 매도→원 매수`로 이루어지는 엔/원 거래를 했으나 최근 엔 강세가 급격히 진행되자 반대거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원 매도`→`달러 매수`·`달러 매도→엔 매수`의 거래가 형성된 것.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도이체방크 등 국제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와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계 기관의 자금을 헤지하기 위해 엔/원 거래를 해오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투기성 거래도 있으며 투기성 자금 역시 손절매에 나서며 엔/원 환율 급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기관마다 차이는 있으나 달러/엔 환율이 대략 3엔정도 이상 움직일 경우 포지션을 닫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의 외국계은행지점 한 딜러는 "투자은행들이 한동안 엔/원이 100엔당 1000원선 아래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 거래에 나섰다가 엔강세 반전으로 인해 포지션을 닫으며 엔/원 추가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엔/원 급등에 엔 대출 업체들 초조
엔/원 환율이 100엔당 1020원대에서 움직이자 그동안 엔저를 기대하며 엔화대출을 늘렸던 기업들의 근심이 쌓이고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이종통화 거래를 통해 엔화수요를 달러와 상쇄하거나 환리스크 관리 기법을 동원, 직접 헤지를 하고있지만 자체 신용으로 엔화자금 도입이 불가능한 중소기업들은 은행권으로부터 대출을 통해 엔화자금 수요를 충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은행권에서 엔화대출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행은 지난해 12억3000만달러의 대출을 실시한 데 이어 올들어 2월말까지 1억4000만달러의 대출을 집행했다. 산은은 지난해 9월 한빛은행에 엔화 시설자금 1000억원을 지원한데 이어 지난달 25일에도 1000억원을 추가로 전대키로 해 엔화대출이 일반 시중은행들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업체들이 달러대출보다 엔화대출을 선호하는 이유는 통화별 금리차에 따른 것으로 엔 리보(Libor: 런던은행간 금리)가 0.1% 수준인데 비해 달러 리보는 2% 가량으로 약 20배의 차이가 나고 있다. 외화대출은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의 융자대상 제한 폐지를 계기로 증가세를 타는 중.
그러나 3월들어 엔화가 강세현상을 띠기 시작하자 기업들의 엔화대출 수요가 크게 줄었다. 산업은행 엔화대출 담당자는 "엔화대출이 늘어나며 올해 2월말 현재 달러화 대출규모 3500만달러를 크게 넘어섰으나 최근에는 엔화강세 반전으로 인해 대출이 급감했다"며 "엔/원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이상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부채증가를 우려하는 기업들이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상모 신한은행 자금시장부 팀장은 "최근 포지션 변화를 보면 중소기업들이 올해 1000만달러 가량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대출 상환일이 다가왔을 때에도 엔/원이 내려가지 않으면 부채상환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대출은 장기 시설자금 대출이 대부분이라 당장 상환해야할 염려는 없는 편이나 향후 엔/원 환율이 추가상승할 경우 업체들의 부채규모가 커지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최근 엔화대출을 받은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한-일 경제상황에 근거해 엔/원 환율이 쉽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2월에 100억원 가량을 대출했다"며 "갑작스럽게 엔/원이 뛰는 바람에 1500만원 가량의 수수료를 부담하고서라도 대출통화를 원화로 변경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엔저 복귀 가능성에 기대
이처럼 엔/원 환율이 엔화대출 기업들의 경영상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은 향후 엔/원 환율추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엔 환율과 달러/원 환율이 펀드멘털을 고려해 움직일 경우 엔/원 환율은 중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기회복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반면 아직도 일본은 은행 부실채권 문제 등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있는데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힘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현재 시장에서는 엔화 강세추세가 인위적인 주가부양 등으로 2001 회계연도말인 3월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나 그 이후까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다수"라고 전하기도했다.
LG증권도 ▲3월말 기업결산후 해외자산 매입용 자금송출 ▲금융구조조정의 성과 미미로 인한 펀더멘털 개선 한계 ▲일본정부의 엔약세 선호 등으로 인해 4월이후 달러/엔 환율이 130엔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전망이 맞아들어 엔화는 약세를, 원화는 강세를 띠게 될 경우 엔화대출 기업들은 다소 안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엔화환율 전망이 워낙 불투명해 마음놓기는 이른 상황으로 보인다. 지난주 뱅크원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2분기부터 달러/엔 하락폭이 달러/원 하락폭보다 크지며 엔/원 환율이 2분기말 1025원, 3분기말 1042원, 4분기말 1051원대로 지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환율 급변동시 기업들이 엔화대출을 원화표시로 바꿀 수 있는 옵션을 가진 은행 대출상품들이 많이 늘어났다"며 "환율이 불투명할 경우 이러한 상품을 활용하거나 환변동에 따른 리스크 헤지에 각고의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