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산업은행 자금기획부 김계동 시장조달팀장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그 심광수 이사께서 상당히 이색적인 의문을 제기하신 거군요. 해법도 좋았구요.
▲네. 정말 독특한 분입니다.(웃음) 98년 2월부터 10월까지 수신업무 활성화 플랜과 통장식 산금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느라고 혼났습니다. 그때는 평균 퇴근시간이 9시 반, 10시였을 정도니까요. 그해 12월에는 MMDA(Money Market Deposit Account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 시장실세금리에 의한 고금리가 적용되고 자유로운 입출금 및 각종 이체ㆍ결제기능이 결합된 단기상품) 상품판매가 허용됐습니다. 저희도 ‘다모아 저축’ 이라는 상품을 만들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캠페인에 나섰어요.
<변화된 금융환경 변화하는 산업은행>
-그건 처음듣는 얘기로군요.
▲그때 상당수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산업은행을 다니면서 일반은행처럼 예금 구걸하러 다녀야하느냐는 거였죠. 그럴려고 산업은행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식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어요.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처럼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노조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냈었습니다. 당시 김영태 총재께서 워낙 강단이 있으신 분이라 그걸 이겨내셨죠.
저희 팀에서도 다소간의 진통은 있을지 모르나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정부에서 산업은행의 후원자로 남아있을 것도 아닌데 더이상 정부에 의존하는 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시절에도 정부가 산업은행 운영에 관해서 거의 간섭하지 않았어요. 95%이상을 저희 힘으로 펀딩했습니다. 경쟁력제고를 위한 후방효과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돼야만 하는 시기였어요.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듯 "왜곡된 시장도 시장"입니다.>
-제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점은 이것입니다. 시장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는 곳이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발행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경우에 어떠한 생각을 하실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발행을 해야하는데 잘 안된다. 금리도 자꾸 높아진다. 이럴때 발행자의 심경은 어떠할까."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입니다. 산금채 발행시 고려해야 될 요인은 매우 많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은행의 자금사정이에요. 은행자금이 남는 상황에서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을 하겠다고 주장하면 이상하죠.
우리나라 시장의 변동성이 큰 것은 인정하지만 시장상황이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듯 "왜곡된 시장도 시장"입니다. 그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시장은 기본적으로 존중을 해줘야해요.
우리한테 유리할 때만 산금채를 발행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시장에 먹여주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봐요. 시장이 꼼짝달싹 못하고 있을 때는 물론 저도 답답합니다.
-답답하다는 것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하하. 산금채말고 자금조달 수단이 다양화됐어요. 산업은행은 산금채만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CD(Certificate of Deposit 양도성 예금증서, 은행이 정기예금에 대해 발행하는 일종의 무기명 잔고 증명서. 은행에서 개인 및 법인을 대상으로 무기명 할인식으로 발행하고 만기는 91일 이상 180일 이내로 발행금액은 5,000만원 이상 제한이 없다)도 발행합니다.
작년 산은이 발행한 산금채와 CD총 규모가 17조입니다. 산금채 10조2000억원, CD가 6조 가량을 차지했어요. 통안채와 마찬가지로 CD는 만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시장 경색이 오래가면 단기채 수요가 늘어나게 되니까 CD 등장 후 그나마 답답함이 가셨다고 할까요.(웃음) 통상적으로 보면 시장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면 은행자금이 남으니까..허허. 고민은 시장상황이 안 좋을때만 하게 되더라구요.
<시장은 여자의 마음이고 개구리 뛰는 방향이다>
-그것이 자금조달하는 모든 분들의 고민인 것 같습니다. "자금조달을 지금쯤하면 좋겠다" 싶으면 돈이 남아돌고. 올해 들어서 시장상황이 나빠지는 바람에 많이 쉬셨죠?(웃음)
▲정확하게 구정 연휴 이후부터 3월말까지 쉬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좀 발행해 놓고 향후를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리포트도 많이 냈구요.
-리포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중장기적으로는 필요할 때 해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뭐 이런 식의 골자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은행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여자의 마음과 개구리 뛰는 방향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시장이죠. 허허.
물론 단기전망은 힘들지라도 중장기적 추세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올해초에 예측한 금리전망의 경우 단기 저점이 너무나 빨리 도달해버렸지만 그래도 이나마 시장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고 있는 것은 "확장적 통화신축 기조" 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때 까지의 저금리기조 정착" 입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산금채 발행이 한번에 끝나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산금채가 채권시장의 스테디셀러인 것처럼 장사를 올 한 해만 할 것도 아닌데 조급할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판촉물 몇 개 들고 무작정 투자기관들을 찾아갔습니다.">
-재경부의 경우 국채발행이 잘 안될 때는 담당 사무관들이 넌지시 개인적으로 투자기관에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요.(웃음) 팀장님의 경우 지금 산금채를 발행해야하는 시기임에도 불구, 발행비용이 너무 높아 일이 진척이 안된다 싶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 경험이 있으세요?
▲95년에 한 번 있었습니다.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판촉물 몇 개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농협같은 곳을 돌아나녔죠.(웃음) 그래서 200개 정도 팔았습니다. 물론 해갈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만.
-그 당시 무엇때문에 발행이 그리 힘들었나요?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납니다만 하여간 꽉 막혔어요. 오죽하면 판촉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겠습니까. 하하.
-그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궁금하군요. 일종의 세일즈를 하신 것인데.
▲말도 마십시오. 그 당시는 제가 채권쪽에 온지 얼마 되지않았을 때라 정말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때는 왜 그리 어색하던지... 이미 산업은행 경력도 상당하던 시기에 졸지에 증권사 영업사원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한 겁니다.
하지만 "이 난관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산업은행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워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으니까요. 다행인 것은 그 때 이후에는 자금조달에 그처럼 절박하게 매달려야 할 상황은 오지 않았습니다.
<채권시장,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야>
-많은 채권시장관계자들은 외환위기 후 채권시장이 완전히 변화됐다고 말을 합니다. 팀장님은 개인적으로 IMF전과 후의 채권시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모든 부분에서 정말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외환위기 전에는 전체 시장규모가 150조 정도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발행규모만 300조가 넘죠. 특히 장기채권시장이 많이 커졌습니다. 국채 등장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연기금, 보험 등에 장기상품 투자를 허용하면서 시장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채권저변에 종사하는 채권관련 인력들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시장투명성도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채권한다"고 하면 "저 사람이 이거 해서 따로 호주머니라도 차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셨어요. 불과 몇 년전 일입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밝고 깨끗한 분위기가 정착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유독 채권시장만이 ‘우리들만의 리그’로 운영된다는 겁니다. 다른 금융시장의 경우 많은 개방이 일어났어요. 물론 장점도 많지만 global standard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그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산금채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국채가 발행되기 전까지는 산금채가 시장지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단점도 있어요. 딜링장세에서는 대량발행이 곤란하다는 점 때문에 딜링을 채워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고요. 그러나 장기물를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욕구는 충분히 반영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산금채를 FRN(Floating Rate Notes 변동금리부 사채, 발행 금리가 정기예금 금리 등에 연동되어 있는 채권)으로 발행하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아직도 진행중입니까 아니면 취소된 겁니까.
▲상품자체는 확정이 됐습니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얼마로 할 것이냐, 또 스프레드를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의 문제 때문에 늦어지고 있는 것이죠. 저희가 생각하는 상품개발은 완료했지만 시중 FRN이 일종의 변종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것과의 차이를 어떻게 수렴할까 하는 문제를 고민중입니다.
한국 채권시장은 스트레이트(일반 채권)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발행자가 발행을 원할때는 투자자 입맛에 맞지않고 투자자가 원할때는 발행자는 발행하기 싫어요. 시장 자신이 원할때 FRN 발행도 가능할 것입니다. FRN수요는 기본적으로 자금운용자가 자산운용시 매칭을 형성할 수 있어야 생기는 겁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산금채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시장상황에 맞춰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시장발전을 위해 파생상품의 성격을 가미하려는 시도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어쨌든 저희는 시장의 need를 잘 파악해서 그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도록 힘쓸 겁니다.
(김계동 팀장 약력)
-54년 출생(본적 충남 논산)
-72년 서울 경희고 졸업
-73년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입학
-80년 한국산업은행 입행(투자부, 용역사업부, 국제투자부 등)
-94년 수신개발부(차장 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