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이 구리다고? 여기서 먹어봐

  • 등록 2006-11-23 오후 12:00:09

    수정 2006-11-23 오후 12:00:09

▲ 가스불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청국장.

[조선일보 제공] 참 갑갑하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밥집 보성식당에서는 뭐 하나 일찍 나오는 게 없다. 식사를 주문하고 최소한 10분은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주방에서 일하는 걸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감자부침’(1만원)을 시키니 그제서야 포대에서 감자를 꺼내 껍질 벗길 채비를 한다. ‘낙지볶음’(싯가·11월 21일 현재 3만원)은 더 심하다. 낙지가 있는지 미리 전화로 물어보고 주문을 넣어둬야 한다. 양파쯤은 미리 껍질을 까둘 법도 한데, 이마저도 낙지를 씻고 토막 친 다음에야 시작된다. 밑반찬이라도 미리 내주면 급한 허기라도 채우련만.

도대체 식당 돌아가는 게 왜 이리 비효율적이냐고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맛이 없으니까.” 오로지 그 이유란다. 감자는 미리 껍질 벗겨 갈아두면 편하고 빨리 낼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간수를 잘 해도 시꺼멓게 변하는 걸 막기 어렵단다. 낙지는 살아있는 놈을 써야 그 맛이 나오기 때문이고.

그렇게 음식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은 지 이 자리에서만 10년, 방배동 카페골목 시절까지 합치면 18년이 지났다. 고춧가루와 된장을 포함한 모든 양념은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만든 것을 가져다 쓴다. 김치도 물론 고향집에서 담가온다. 18년 전과 똑같다.

그래서인지 맛도 ‘옛 맛’이다. 충무로식 낙지볶음은 매운 게 아니라 혀가 아프다. ‘가학적 요리사’가 ‘자학적 손님들’을 위해 만드는 변태적 음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보성식당 낙지볶음은 우선 기본 재료인 낙지가 좋다. 씹으면 쫄깃쫄깃, 싱싱한 육즙이 입안에 흥건하다. 양념은 적당히 매우면서 단맛도 있어서 균형이 맞는다. 낙지 맛을 가리지 않고 돋우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아는 양조장에서 받아온다는 ‘순곡주’가 낙지볶음과 썩 어울린다. 한 주전자(한 되)에 8000원, 반 되 5000원 받는다. 한 주전자에서 소주잔보다 조금 큰 전용 잔으로 12잔쯤 나오는데, 둘이서 마시면 꽤 취한다.

감자부침은 접시만한 크기 한 장으로 부치면 편하겠지만, 더 맛 있으라고 손바닥 크기 다섯 장으로 도톰하게 부친다. 배추김치, 동치미김치, 시금치나물 등 그때그때 종류와 가짓수가 바뀌는 밑반찬도 간이 쏙 배었다.

이 집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청국장’(5000원)이다. ‘생선찌개’(4000원), ‘순부두’(4000원), ‘비빔밥’(5000원)도 맛있지만 손님들은 대부분 청국장을 주문한다. 두툼한 뚝배기에 집에서 띄운 청국장과 잘게 썬 돼지고기, 호박, 양파, 버섯, 고추 등을 넣고 팔팔 끓여 낸다. 약간 되직한 청국장은 구리지 않고 구수하다. 딱 특유의 향과 맛을 살릴 만큼만 띄웠다. 여기에 밥 넣고 쓱쓱 비벼서 김치를 척 얹어먹는 맛.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행복하다.

오전 11시 30분 문 열어 늦어도 오후 10시면 문 닫는다. 일요일은 오후 4시까지 연다. 주차장이 없으니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맛 ★★★★ 서비스 ★★★ 분위기 ★ 만족도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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