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남에서 사는 이유

  • 등록 2018-01-28 오후 4:46:38

    수정 2018-01-28 오후 5:02:02

[이데일리 조철현 건설부동산부장] 강남에 사는 L씨는 요즘 기분이 무척 좋다. 최근 부쩍 오른 집값 때문이다. 지난해 봄 매입한 32평짜리 잠원동 아파트는 1년도 안 돼 5억원이나 올랐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그동안 오른 집값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다. 이웃 주민들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라는 초유의 ‘세금 폭탄’도 견뎠는데, 이 정도 대책은 우습게 여기는 눈치다.

정부가 재건축에 ‘4중 족쇄’(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재건축 연한 연장, 안전진단 강화,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를 채우려는 데도 주택시장이 꿋꿋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강남 집값은 더 오를 것 같다. 정말 그때 강남 집을 사길 잘했다. 실제로 강남에서 살아보니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바둑판처럼 깔린 도로와 촘촘하게 연결된 지하철 노선, 풍부한 생활편의시설과 잘 갖춰진 교육 인프라….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출범 한 달 만에 강남을 겨냥한 부동산 규제책을 꺼냈을 땐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괜히 무리해서 강남 집을 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L씨 아파트값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뛰어올랐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아챘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달리면 가격은 오른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살고 싶은 사람은 많은 데 떠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동네 집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수요 억제책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잘못된 대응이다. 제대로 된 공급 방안이 빠진 부동산 대책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강남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들을 끌어안을 만한 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 아파트를 지을 빈땅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재건축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양도세 중과 시행을 앞두고 다주택자 소유 매물이 좀 나올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강남 아파트는 매물이 씨가 말랐다고 한다. 다주택자들이 다른 지역 집은 팔지언정 ‘똘똘한’ 강남 아파트는 움켜주고 내놓지 않아서다.

정부가 올해부터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에 나서고,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늘리면서 안전진단도 강화하겠다고 하니 L씨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재건축 사업이 막혀 공급이 줄면 강남 집값은 계속 더 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부의 자사고 및 외고 폐지 추진으로 ‘강남 8학군’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L씨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강남 진입에 목을 매는 학부모가 더 늘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L씨는 강남으로 이사한 이후 깨달은 게 있다. 부동산 대책이 특정 지역을 겨냥할수록 그곳 집값은 더 오르고 지역 양극화만 초래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L씨는 정부가 한 달에 한 벌꼴로 발표하는 부동산 대책을 두세 번으로 늘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결심 한 가지. L씨는 6월 지방선거 때 ‘강남 집값 잡기’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정당 추천 후보자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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