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온 나라가 지금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한 지 불과 1년 반만의 일이다. 지금 나라를 흔들고 있는 것은 비단 경제문제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혁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던 의약분업이 시행 반년만에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현 정부가 추진해 온 개혁 전반의 정당성은 물론 개혁 주도세력의 리더십마저 근본부터 의심받고 있다.
의약분업 2년차를 맞은 건강보험 재정은 올 한해에만 무려 4조원의 당기적자가 불가피할 정도로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제도를 밀어붙인 결과다. 의보재정은 벌써부터 지역-직장 의보를 통합하면서 파탄경고를 받아 왔다. 기대했던 의약분업의 순기능은 온데 간데 없고 국민들은 막대한 재정부담과 불편만을 안게 됐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마당에 정책실패의 뒷처리까지 떠맡게 된 국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문제가 없다는 말만 듣고 시작했지만 지금 보면 준비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며 "의약분업은 내 책임이 크다"고 원죄를 뒤집어 썼다. 정책실패의 충격파가 국가 리더십에까지 미치는 양상이다.
2월까지 4대부문의 개혁을 마무리, 경제활력을 되찾도록 하겠다던 약속도 기대만을 키울뿐 피부로는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다. 뛰는 물가와 집세, 얇아진 봉급봉투, 반토막난 주가를 걱정하는 것은 호사로 여겨진다. 이미 11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기약없이 직장을 찾아 헤매고 있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사라졌다`고 외치지만 시장은 이를 믿지 않는다. 현대 계열사에 대한 금융지원이 나오면 일단 `특혜성 구제금융`으로 규정하고 보는 태도가 팽배하다. 문제는 시장의 시각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무작정 믿지 않는다는데 있다.
금리를 내려도 자금은 기업부문으로 쉽사리 흘러들지 않고 단기자금 시장 주변을 떠돌고 있다. 기업을 장기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를 돈 흐름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일본발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희망의 싹마저 위협하고 있다. "하반기중 경기회복을 확신한다"던 김 대통령의 장담이 무색해질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복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오로지 1년반 남은 `대권`향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신문의 정치면과 TV 정치뉴스는 대권주자들과 그 주변인들의 다툼 일색이다. 대통령이 나서 대권행보에 제동을 걸어도 이들의 행태는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책임있게 정책을 쓰고 국정을 수행해 나가야 할 관료조직은 국가의 미래보다는 개인의 `안위`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관가는 수개월째 인사설에 휘말려 있고, 젊은 공무원들은 전문 행정가의 꿈을 접고 민간으로 대거 이동중이다.
국가행정의 인프라가 뿌리째 흔들린 지 이미 오래지만 손 쓰려는 이가 없다. 팀워크를 자랑하던 경제팀은 `세율인하`를 놓고 공개적으로 정반대의 소리를 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금 모으기` 정신을 되살리자고 호소하지만 이를 이끌 리더십과 신뢰, 희망 모두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죽어야 산다는 옛말이 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죽으려 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극복을 선언한 지 1년반이 지난 2001년 3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